빈병 팔아 215만원 기부한 '얼굴 없는 천사'…3월에도 선행

입력
2020.12.23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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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시간 강릉 북부지구대 현금 놓고가 
"코로나19로 고생하는 분들에 써주세요"


어둠이 가시지 않은 23일 오전 5시 55분쯤 강원 강릉경찰서 북부지구대. 영하의 날씨 속에 패딩으로 무장한 여성이 지구대 출입문에 작은 종이가방을 놓고 사라졌다.

인기척을 느낀 지구대 근무자가 여성에게 "선생님"하며 소리쳤지만, 그는 종종걸음으로 발길을 재촉하더니, 이내 사라졌다.

그가 남긴 종이봉투엔 '작은 성의입니다. 코로나19로 고생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될 수 있음 합니다'라는 메모와 함께, 지폐 뭉치와 동전 꾸러미 4개가 담겨 있었다. 살림이 넉넉치 않은 가운데 어렵게 모은 215만 9,020원을 익명으로 기부한 것이다.

경찰이 폐쇄회로(CC)TV를 확인한 결과, 동틀 무렵 지구대를 찾았던 이는 강릉시 주문진읍에 사는 40대 A씨로 확인됐다. 그는 지난 3월 20일 새벽 '저소득층 어르신들을 위해 마스크와 손소독제 등을 구입하는데 써달라'며 22만원을 북부지구대에 기부했던 '얼굴 없는 천사'와 동일 인물이었다. 이번에도 빈병을 팔아 마련한 돈으로 9개월 만에 묵묵히 이웃사랑을 실천한 것이다.

이승엽(41) 지구대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모두가 힘든 가운데도 3월에 이어 연말에도 어렵게 모은 돈을 기부했다"며 "어렵게 전화통화가 됐으나 기부자께서 이번에도 선행이 알려지는 것을 정중히 사양했다"고 말했다.

이 대장은 "기부자의 뜻을 존중해 주문진읍사무소와 협의해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쓸 계획"이라며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이웃들이 있어 경찰들도 힘이 난다"고 미소를 지었다.


박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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