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 스캔들’에 연루된 측근 2명을 또 사면했다. 스캔들에 관여한 측근 인사를 벌써 3번째 사면ㆍ감형했다. 한 달도 남지 않은 임기 막판까지 대통령 특권인 사면권을 불법을 저지른 측근 보호에 남용하고 있다는 비난이 거세다.
트럼프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발표한 사면 명단 15인에는 2016년 대선 비리 의혹인 러시아 스캔들에 연루돼 유죄 판결을 받은 조지 파파도풀로스 전 트럼프 대선캠프 외교정책 고문과 변호사 알렉스 판 데어 즈완이 포함됐다. 두 사람은 대선 의혹을 수사한 로버트 뮬러 특검에 의해 거짓 진술 혐의로 기소됐다. 유죄를 인정하는 대신 감형을 받아 2018년 각각 14일, 30일이라는 짧은 징역형에 처해졌다. 네덜란드 국적인 즈완은 출소 직후 유럽으로 추방까지 됐다. 범법 사실이 분명했다는 얘기다.
일간 뉴욕타임스는 “앞으로 뮬러 특검 관련 사면이 더 많이 나올 것이라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7월과 11월 각각 선거 참모 로저 스톤과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사면했다. 스톤은 위증교사 혐의로 징역 40개월형을 선고 받았으나 복역을 불과 나흘 앞두고 사실상 사면에 가까운 특별 감형을 받아 풀려났다.
외신은 무더기 사면에 트럼프 대통령이 특검 수사 결과를 뒤집으려는 목적이 담겨 있다고 분석한다. 특검이 4년 전 대선에서 러시아가 트럼프 캠프와 결탁해 사이버 해킹 등으로 선거에 개입한 의혹을 조사했으나 공모 증거까지는 밝혀내지 못해 트럼프 대통령은 처벌을 피할 수 있었다. 백악관은 이날 성명에서 “뮬러 팀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한 잘못을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된다”며 사면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일각에선 트럼프가 임기 내내 보인 ‘러시아 집착증’을 또 한번 보여줬다고 평가한다. 최근엔 측근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조차 대규모 정부기관 해킹 사태 배후로 러시아를 지목했는데도, 그는 “진짜 범인은 중국” 등의 발언을 쏟아내며 연루설을 애써 부정했다. 이날 “러시아의 침입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경고한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과 대립각을 세우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러시아의 사이버해킹을 부인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게 트럼프 재임 기간 하나의 ‘(행동) 유형’이었다”고 꼬집었다.
이날 사면 명단에는 던컨 헌터, 크리스 콜린스, 스티브 스톡먼 등 전직 공화당 소속 의원들도 포함돼 임기 말 백악관에 쇄도하는 ‘사면 러시’가 현실화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