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박선영(45)씨는 퇴근 후 집에 와서 마스크를 버리기 전 늘 마스크의 고무줄을 자른다. 혹시라도 폐마스크가 바다로 흘러 들어가 물고기의 몸통을 조르지 않을까 걱정돼서다. 기후변화와 환경오염 문제에 세심하지 않으면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대학생 이모씨(23)는 외출 때마다 텀블러를 챙기고, 배달 음식은 시켜 먹지 않는다.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도 성실히 한다. 모두 일회용품으로 인한 환경 문제를 줄이기 위해서다. 이씨는 이런 노력을 하면서도 항상 무력감을 느낀다. “이미 주변에 플라스틱, 일회용품이 넘쳐나는데 개인이 노력한다고 큰 변화가 일어날 것 같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기업과 국가가 환경 보호의 책임을 떠넘기는 동안 나는 더 큰 죄책감과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씨처럼 기후위기와 환경파괴로 인해 만성적인 두려움이나 슬픔을 느끼는 상태를 ‘기후 우울’이라고 한다. 2017년 미국 심리학회(APA)는 보고서(Mental Health And Our Changing Climate)에서 돌이키기 어려운 기후 변화로 만성적인 스트레스를 겪는 사람들이 있으며 이에 따른 우울, 불안 등이 확산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실제로 2019년 예일대학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53%가 기후 위기에 대해 "무력감을 느낀다"고 답했고, 46%는 "두렵다"고 했다. 45%는 “분노 중”이라고 했으며,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도 33%였다.
기후 위기가 "걱정된다"고 답한 사람은 66%였는데, 이는 5년 전인 2014년보다 약 10%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직장인 송모씨(25)는 대학 시절 환경 동아리에 가입해 ‘올바른 분리수거 방법’ 책자를 만들어 배포하고 캠페인을 진행할 만큼 환경 보호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송씨도 한계를 느끼고 있다. 그는 “(내가) 노력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환경을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서지는 않고 있다. 이렇게 가다간 앞으로 지구에 깨끗한 자연이 남지 않을 거란 생각에 우울해진다”고 했다.
미래를 위해 생활 자체를 친환경적으로 바꾸려 해도 생산 자체의 결함으로 소비자 입장에선 어찌해볼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쓰레기를 최소한으로 배출하려고 샴푸나 마스크 등은 대용량 리필 위주로 구매한다는 대학원생 박모씨(26)는 "각종 용품이 애초부터 분리수거를 하기 어렵게 만들어졌다"며 “비닐 코팅이 된 종이 포장재나 알루미늄과 플라스틱이 혼합된 건강음료 용기는 모두 소각용으로 버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특히 “프린터 토너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서 집에 쌓아놨다”고 털어놨다.
이들은 재활용 등의 문제를 더 이상 소비자에게 전가하지 말고 국가와 기업이 나서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이씨는 “그린워싱(기업이 실제로는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제품을 만들면서 겉으로는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내세우는 행위)을 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봤다”며 “이런 건 개인이 개선하긴 어렵기 때문에 환경부가 실태를 파악하고 철저하게 단속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밝혔다.
교육의 중요성도 빼놓을 수 없다. 송씨는 “일본 초등학교에선 음료 병뚜껑 모으기 행사를 열어서 어렸을 때부터 분리수거 하는 습관을 기르게 한다고 들었다”면서 “이것처럼 사람들이 어렸을 때부터 환경을 위한 행동을 하면서 뿌듯함을 느끼게 해서 환경 보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