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싫어서 떠나가는 사람들을 종종 봤다. 언젠가 반드시 뜰 거라고 말하는 이들도 많이 있다. 물론 이상향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유토피아도, 샹그리라도, 율도국도 도달할 수 없는 너머에 있을 뿐이다. 현실에 존재하는 나라의 국민이 된다는 것은 어디나 비슷하다. 맘에 안 드는 것이 많고, 불합리하고 비상식적인 면들도 널렸고... 이방인으로 살아가지 않는 한, 국가와의 불편한 동거를 해소할 방법은 없다. 여행자가 아니라 국민, 주민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디에서나 비슷한 고충이 있다.
그렇다면 완벽한 해결책이 있다. 직접 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국가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 하지만 국가와 국경선의 경계가 모호했던 근대 이전이 아니라 현대에 과연 가능한 일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혼자 또는 일부 집단이 외진 곳에 들어가 상상의 국가를 만들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그런데 실행했던 사람이 있다. 먼 과거도 아니고 1968년의 일이다. 넷플릭스에서 뭘 볼까 뒤적거리다가 '로즈 아일랜드 공화국'이라는 이탈리아 영화가 올라온 것을 봤다. '한 남자가 이탈리아 영해 인근에 인공섬을 만들고 독립국으로 선포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고 설명이 적혀 있다. 너무 궁금해서 바로 보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볼로냐 출신의 조르자 로사는 엔지니어다. 아이디어가 넘치고 재능도 뛰어나 무엇이건 만들 수 있다. 학교 과제로 자동차나 복엽기를 만드는 것 정도는 간단하다. 재미있는 것을 만들고 싶어, 생각을 하면 바로 실행에 옮기고 결과물을 만든다. 그런데 비행기를 하늘에 날리면 체포가 되고, 금지가 된다. 내가 만든 자동차를 몰고 가는데 번호판이 없다고 압수당한다.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내가 재미있는 일을 하는데 왜 국가가 일일이 간섭을 하는 것일까.
자동차 회사 엔지니어로 들어갔지만 결국 그만두고 나온 로사는 조선소 오너의 아들인 마우리찌오를 찾아간다. 바다에 인공섬을 만들자. 해안에서 500미터를 나가면 공해가 되고, 그곳에 섬을 만들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자유로운 곳이 될 수 있다. 로사와 마우리찌오는 리미니 앞바다에 나가 철기둥을 세우고, 섬을 만든다. 주민들도 생긴다. 바다에서 조난당했던 피에트로가 정착한다. 이탈리아에 왔다가 탈영하여 독일 국적을 잃어버린 노이만도 합류한다. 노이만은 이탈리아인이 아니라서 개인 사업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리니미를 찾은 사람들은 500미터 바깥에 있는 로사의 섬을 방문하기 시작한다. 이탈리아가 아니고, 어떤 제약이나 간섭도 없는 장소라는 느낌이 그들을 끌어들인다. 섬을 찾아 하는 일은 한가롭게 수영을 하거나, 춤을 추거나 술을 마시는 정도다. 리미니 해안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을, 사람들은 굳이 보트를 타고 와서 로사의 섬에서 한다. 그러니까 결국은 만들어내는 것이다. 별다른 차이가 없어도, 이상과 현실의 미묘한 경계에 생명을 불어넣고 이름을 붙여 주면 사람들은 다르게 받아들인다.
로사가 사랑하는 여인 가브리엘라는 묻는다. 이곳은 국가냐, 디스코텍이냐. ‘완벽한 자유를 찾는 개념’으로 시작했던 로사는 국가를 선언한다.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가라는 콘셉트를 취할 수밖에 없다. 1968년 5월 “영해에서 500m 떨어진 이곳에서,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우리가 역사를 만들고 있습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진정으로 자유롭습니다. 로즈 아일랜드 공화국"이라며 로사는 국가를 선언한다.
로사의 생각이나 행동에 확고한 이념이나 철학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자유로운 인간이고 통제받기 싫어할 뿐이다. 그런데 마침 시대가 1968년이다. 프랑스의 학생들이 68년 5월 혁명을 일으킨 바로 그 시절.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겠다며 기존 체제에 도전한 젊은이들의 열기는 무척이나 뜨거웠고, 기성 세대는 분노하며 압박을 가했다. 로사가 좌파 이념에 동조한 것은 아니지만 젊은이 특유의 반항이나 열정은 그들 이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로사에게는 인공섬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자신의 생각을 물질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은 대단한 장점이다.
우스개장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요즘 같으면 어떨까? 누군가 바다에 인공 섬을 만들어서 국가를 선포한다면 일종의 관광 브랜드라 생각하고 내버려 두지 않을까? 남이섬을 나미나라공화국이라 부르는 것처럼. 하지만 1968년에는 달랐다. 국가를 선언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탈리아 정부에서는 과한 반응을 보인다. 절대로 용납할 수 없고, 아예 흔적도 찾지 못하게 밟아버리려 한다.
이탈리아 정치인과 관료들의 대응을 보며 의아했다. 과민반응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회의나 대화를 보면 한심하고 절망스럽다. 한 정치인은 ‘TV에서는 분열과 괴물과 섹스만 나온다. 그러니까 젊은이들이 엉망이 되는 것’이라며 불만을 터트린다. 관료를 만난 종교인은 신문에 나온 로즈 아일랜드의 사진을 보며, 비키니 수영복이 버젓이 지면에 나온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기성세대는 지금 이곳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 제일 좋다. 기존의 가치와 윤리와 규범을 그대로 유지하며 아무 것도 변화하지 않는 것.
겨우 주민 5명의 로즈 아일랜드를 없애기 위해 이탈리아는 음모와 무력행사를 시도한다. 로사와 주민들을 체포하기 위해 특수부대가 진입하는 장면과 이탈리아 정부의 관료들이 파티를 여는 장면이 교차된다. 정치인, 관료, 종교인 등 이탈리아를 지배하는 집단은 로사의 국가만이 아니라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개념 자체를 파괴하려 한다. “자신들이 옳다는 걸 증명하려고 상징적인 행동을 하겠지.” 텅 비어버린 로즈 아일랜드이지만, 그것조차 파괴해버리기 위해 정부는 군함을 투입한다. 로즈 아일랜드 공화국을 파괴한 행위는 2차 대전 후 이탈리아 공화국이 행한 최초이자 유일한 침공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아무리 멋진 세상을 꿈꾸어도 현실에 구현하는 것은 엄청나게 힘들거나 불가능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혁명의 시대는 이미 저문 정도를 넘어 화석이 되었고, 세기말 이후의 시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안개속이다. 아예 꿈을 꾸지 말아야 할까? 일단 현실에 적응하여 힘을 기르면서 언젠가 권력을 쟁취할 날을 기다리면 되는 것일까?
영화 '로즈 아일랜드 공화국'만이 아니라 실제 사건을 찾아봐도, 로사의 시도가 일종의 해프닝인 것은 분명하지만 적어도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많은 이들이 로즈 아일랜드에서 본 것은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잠깐 느낄 수 있는 자유의 바람 같은 것.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공해에 떠 있는 낙원으로서의 국가를 잠시 만끽한 것이다. 말로만 늘 자유니 뭐니 떠들면 뭐 하나. 지금 내가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다.
왜 인공섬을 만들었냐는 질문에 로사는 답한다. “나는 엔지니어이고, 만들 수 있으니까.” 그 말이 정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