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가족에게 떳떳합니다. 51년 만의 무죄를 축하합니다."
16일 박상은(74)씨가 서울서부지법 법정에서 재판을 마치고 법원 건물을 나서자, 가족들이 준비한 플래카드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간첩으로 몰려 20년을 복역하고, 출소 이후에도 31년간 '간첩' 오명을 쓴 채 살아야 했던 51년의 세월. 파릇파릇한 20대 청년은 일흔이 훌쩍 넘어서야 평생 짊어졌던 고초와 수난의 짐을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었다.
박씨는 1969년 5월 1일 강원 화천군에서 군 복무를 하던 중 고참의 구타를 이기기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결심으로 부대를 무단 이탈했다.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돌아오려 했으나 악천후를 만나 산속에서 길을 잃었다고 한다.
박씨는 인근 15사단 병력에 발견돼 소속 부대로 인계됐지만, 당시 군은 박씨에게 북한으로 도주하려 했다는 혐의를 씌워 불법 구금했다. 보안부대는 박씨를 고문하며 '북한을 찬양한다' '북한으로 넘어가려했다'는 거짓 자백을 강요했다.
자백 이후 수사와 재판은 일사천리로 진행돼 그 해 6월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20년하고도 7개월을 복역한 끝에, 그는 1989년 중년의 나이에 되어서야 가석방으로 바깥 세상을 볼 수 있었다. 출소는 했으나 '간첩 전과'가 있는 떳떳하지 못한 삶이었다.
그는 일흔이 넘어서야 오명을 씻을 기회를 찾았다. 지난해 법원에 넣었던 재심 청구가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이 달라졌어도 누명을 털기는 쉽지 않았다. 검찰은 재심에서도 그에게 혐의가 있다고 보아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하지만 법원은 박씨의 말을 믿어 줬다. 16일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 문병찬)는 군형법상 적진으로의 도주 미수 혐의를 받는 박씨의 기존 유죄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증거 자료와 진술 등을 토대로 "박씨가 1969년 당시 월북하려 했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고, 공소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박씨가 제102보안부대 내무반에 수갑이 채워진 채 불법 구금돼 가혹행위를 당했고, 조사 과정에서 나온 박씨의 자백 진술 역시 증거능력이 없다고 설명했다.
51년을 기다린 무죄 선고에 눈물을 흘린 박씨는 "다시 태어난 기분"이라며 "앞으로는 나 같은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감격했다. 또 "재판부가 제 진심을 알아줬다"며 "두 아들에게 마음의 자유를 준 점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