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 정미경(53)씨가 없었다면, 서울 방배동 다세대주택에서 일어난 ‘모자의 비극’은 알려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는 어머니 김모(60)씨가 숨지자 어머니 시신을 두고 노숙을 하러 집을 나온 발달장애인 최모(36)씨를 위기에서 건져 냈다.
정씨는 지난달 6일 최씨를 처음 만난 날을 똑똑히 기억한다. 부스스한 머리와 부르튼 손등. 딱 봐도 노숙한 지 꽤 시간이 흐른 행색이었다. 한 달 뒤 최씨를 다시 만난 정씨는 그를 보자마자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선 마주 앉은 식당에서 최씨는 어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엄마가요, '팔이 안 움직여'하면서 갑자기 픽 쓰러졌어요."
15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정씨는 “방배동 모자를 도울 길이 분명히 있었다”라고 안타까워했다. 보편적 복지를 지향하는 나라에서 어머니가 숨진 지 5개월 만에 발견되고 아들은 노숙을 해야 했던 비극. 단순히 모자가 복지 혜택을 신청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난 달 최씨는 정씨를 두세 번 만났어도 마음을 쉽게 열지 않았다. 정씨는 “최씨를 처음 봤을 때부터 어린 아이로 느껴졌다”라며 “빨리 구조해야 된다는 생각에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씨는 최씨를 다시 만난 이달 3일 그에게 “잘못했다, 미안하다”고 용서를 빌었다. 정씨 는 “어린 아이를 두고 간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바로 사과를 했다”며 “최씨가 바로 ‘알겠어요. 용서해 줄게요’라고 말하더라”고 회상했다. 그리고 정씨는 식당에서 최씨 어머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듣자마자 방배동 다세대주택으로 달려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신발장 옆에 단전 예고 통지서와 체납 고지서들이 어지럽게 붙어 있었다. 최씨는 누가 문을 두드리면 숨죽이고 있다가, 발소리가 사라지면 문을 열고 그 종이들을 옮겨 붙였다고 했다.
정씨는 ‘상담의 부재’가 김씨 모자의 비극을 불러왔다고 봤다. 그는 “가계 상황을 알았다면 분명히 아들 최씨를 장애인으로 등록해 수당이나 연금을 받게 했을 것”이라며 “본인 신청이 있어야만 가능했다는 인식에 머무르면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전혀 바뀐 게 없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씨는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지 않았기 때문에 김씨 모자가 복지혜택을 받지 못했다고 보는 시각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그보다 복지행정을 담당하는 많은 이들의 무관심이 더 큰 문제라고 봤다. 관계 단절 증명서를 쓸 경우, 구청에 있는 생활보장심의위원회에서 심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씨 모자가 더 많은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었음에도 그렇지 못했던 사실에 정씨는 특히 안타까워했다. 그는 “김씨 모자는 주거급여 28만원만 받아왔는데, 실제로는 장애인 연금 40여만원과 생계급여 50여만원을 더하면 120만원까지 받을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정씨는 지금 복지 체계는 ‘복불복’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정보를 아는 수급자이거나, 공무원이 먼저 알려주지 않으면 정보의 비대칭성이 해소되지 않는다”며 “주민센터가 현재의 위기상황, 강점, 근로의욕, 자본, 위험성, 인적 관계 등을 세분화해 각 가정을 살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위기가구 발굴 시스템’에서 기존 수급권자가 제외되는 상황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씨는 “누군가가 신고하거나 본인이 신청하지 않으면 발굴은 쉽지 않다”며 “현장에서 수급자 관리가 제대로 되는지 점검이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또 공무원에게는 고지의 의무가 있으므로, 의무를 이행할 세부적인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내놨다.
정씨는 방배동 모자의 비극이 언제든 우리의 비극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씨는 “실직, 노령, 출산, 산업재해 등 사회적 위험은 모든 사람에게 있다”며 "복지 혜택이 모세혈관까지 전달이 잘 되도록 촘촘히 정비되지 않으면 이런 비극은 반복될 것”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