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영화전문지 사이트 앤드 사운드는 1952년부터 10년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를 선정하고 있다. 1962년 이후 50년 동안 1위를 차지한 작품이 있다. 할리우드 영화 '시민 케인'(1941)이다. 2012년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1958)이 '시민 케인'을 제치고 수위에 올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화광 자격시험이 있다면 '시민 케인'은 매번 출제될 영화다.
'시민 케인'은 정작 웬만한 영화 애호가가 아니라면 미국인들조차 잘 모르는 영화다. 개봉 당시 흥행에서 별 재미를 못 봤고,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9개 부문에 올라 각본상 하나만을 가져갔다. 영화는 언론 재벌 찰스 포스터 케인의 욕망과 집착을 통해 미국사회를 들여다본다. 미국 신문왕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1863~1951)의 삶에서 영감을 얻었다. 허스트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시민 케인'에 분노했다. 갖은 방법을 동원해 '시민 케인'을 방해했다. 허스트의 언론사들은 '시민 케인'에 대해 보도하지 않았고, 그가 소유한 극장들은 '시민 케인'의 상영을 불허했다.
허스트의 해코지는 상식을 넘었다(허스트의 인성이 궁금하다면 넷플릭스에서 ‘에일리어니스트2’를 보라). 웰스가 머물던 호텔 방 다락에 14세 소녀를 숨기고, 사진기자 2명이 대기하도록 했다. 웰스가 방에 들어온 순간 '갇힌 소녀'와 사진을 찍어 파렴치범으로 몰 요량이었다. 웰스가 호텔로 돌아가기 직전 한 경찰이 제보해 위기를 모면했다.
지난달 극장 개봉하고, 지난 4일 넷플릭스에서 선보인 '맹크'(데이비드 핀처 감독)는 '시민 케인' 제작 뒷이야기를 다룬다. 정확히는 '시민 케인'의 시나리오 작가 허먼 맹키위츠(1897~1953)가 시나리오를 쓰게 된 계기와 과정을 세묘한다. '시민 케인'의 감독과 주연을 겸한 오슨 웰스(1915~1985)가 맹크(맹키위츠의 애칭)와 일하게 된 과정, 맹크가 허스트와 친밀한 관계였으면서도 등을 돌리게 된 당대의 정치적 상황, 대공황기였던 1930년대 할리우드의 풍광이 이어진다.
'맹크'는 도입부부터 '시민 케인'을 '오마주'한다. 영화는 맹크가 시나리오 집필을 위해 머무는 '노스 버드(North Verde)' 목장의 이정표를 비춘다. '시민 케인'은 케인이 '로즈버드(Rosebud)'를 언급하며 숨지는 장면으로 스크린을 연다. '맹크'는 노스 버드와 로즈버드 발음의 유사성을 주목하며 '시민 케인'을 소환한 셈이다.
'맹크'는 '시민 케인'의 영화기법을 재활용하기도 한다. '시민 케인'의 그 유명한 '디프 포커스(Deep Focusㆍ화면 대부분에 초점을 맞춰 한 공간에 있는 사람과 사물을 모두 명료하게 보여주는 촬영기법)'를 따라 한다. '맹크'의 잦은 플래시백은 '시민 케인'의 화법이기도 하다. 여러 숫자를 클로즈업해 얼굴과 오버랩 시키며 시간 경과를 표현해내는 장면도 닮았다.
패기 넘치고 오만한 젊은 천재 웰스와 술주정뱅이 맹크의 삶은 닮은 꼴이다. 젊어서는 재능을 인정 받았으나 인생 후반은 불우했다. 웰스의 유작 '바람의 저편'은 1970년부터 6년을 촬영하고도 완성되지 못했다. 퇴물 웰스에게 돈을 쏟을 할리우드 제작자는 없었다. 할리우드라는 우주에서 웰스는 맹크이고, 맹크는 웰스였던 셈. '바람의 저편'은 넷플릭스의 후원으로 뒤늦게 완성돼 2018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됐다.
사족 하나. 오래된 영화, 오래 전 인물을 재조명하고 영화로 만드는 곳이 전통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아닌, 실리콘밸리 태생 넷플릭스라는 점이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