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권의 가장 뜨거운 질문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과연 대선에 뛰어들까’다. 윤 총장이 최근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1위까지 오르자 뒤따르는 자연스런 의문이다.
이 질문은 그러나 지금으로선 매우 불온하다. 검찰총장 출신이 정치에 참여한 적이 없었던 관례만 보더라도 윤 총장의 대선 참여 자체가 극히 논쟁적이기 때문이다. 법무부 징계위에서 그가 정치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징계가 거론하는 현실이 이 질문의 정치적 인화성을 드러낸다. 이는 윤 총장의 정치 참여를 대선 국면마다 등장했던 기존의 제 3후보론과 달리 보게 하는 특징적 대목이다.
고건, 안철수, 반기문 등 과거 정치권 밖에서 대선 참여 가능성을 저울질했던 제 3후보들에게 대선 참여의 윤리적 제한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윤 총장은 다르다. 역대 검찰총장들은 대선은 고사하고 정치권 자체에 발을 담그지 않았다. 검찰수장으로서 후배들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형성된 불문율이다.
윤 총장이 아예 법적으로도 다음 대선에 참여하지 못할 가능성도 대두되고 있다. 열린민주당은 최근 판검사들을 대상으로 퇴임 후 1년간 공직후보자 출마를 제한하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판사 출신인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사법절차인 재판과 수사에 종사하는 사람은 냉각기가 필요하다”며 거들었다. 실제 입법화 여부와 별개로 윤 총장의 정치 참여시 대대적인 공세의 발판을 까는 포석이다.
이에 반해 그의 출마를 옹호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것은 부당한 탄압에 따른 '성난 민심론'이다.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은 “윤 총장이 정치의 ‘정’자도 꺼내지 않았지만 국민들이 그를 불러내고 있다. 현 정부의 부당한 탄압에 대해 국민들이 시시비비를 가리고 있는 것이다. 윤 총장은 이미 국민이란 호랑이 위에 타 있다”고 말했다. 현 정부를 심판하려는 민심이 윤 총장을 출마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갈 것이란 얘기다. 검찰 출신인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도 “이번처럼 정권을 수사한다는 이유로 검찰총장과 검찰을 찍어 누른 적이 없다. 지금은 특수한 상황”이라며 그의 출마를 정당화하면서 구체적인 현실론도 꺼냈다. “공수처가 윤 총장을 수사하고 압박한다면 민간인이 된 윤 총장으로서도 자기 방어가 필요하다. 공수처 수사가 그의 정치 참여를 이끄는 방아쇠가 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출마를 안 하는 게 낫다는 의견이 야권내에선 상존한다. 민주당을 탈당한 금태섭 전 의원은 “윤 총장이 현 정부로부터 부당한 탄압을 받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검찰총장에서 물러난 뒤 곧바로 정치에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보수의 책사’로 꼽히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대통령이 자신이 임명한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이 한달 이상 주먹다짐을 하는 데 모른 척 하고 있다. 아프리카 부족 추장도 이러지 않는다. 이런 법이 어디 있냐. 이런 게 특수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윤 총장의 대선 도전은 쉽지 않다. 윤 총장이 아무리 정치적으로 억울하고 핍박을 당했더라도 퇴임 후에 정치를 하면 안 된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전통과 정신을 지키기 위해 정치를 안 하겠다’고 말 하는 게 고도의 정치다.” 윤 총장이 정치에 참여하면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로 정치적 탄압을 받고 있는 명분이 퇴색할 수 있다는 우려다.
이런 논란은 기존의 제3후보들과 달리 윤 총장의 출마 문턱이 매우 높다는 의미다. 제3후보들이 조직과 정치 경험이 없어 실패를 반복했던 전례도 윤 총장의 정치 진입을 막는 장벽이다. 단순한 지지세만으로 윤 총장이 출마 명분이나 동기로 삼기엔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윤 총장의 출마 가능성은 지금으로선 높게 잡아도 ‘50대 50대’이다.
역으로 보면 윤 총장 출마는 기존의 불문율을 뛰어넘을 만한 정치적 에너지와 명분이 축적됐을 때만 가능하다는 뜻이다. 무리한 윤 총장 찍어내기에다 부동산정책 실패 등으로 현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반문(反文) 정서가 극대화된 상황이 조성돼야 하는 것이다.
이는 윤 총장 현상을 기존의 제3후보론와 차별화시키는 또 다른 특징이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제3후보로 주가가 올랐던 고건 전 총리는 당시 참여정부에도 몸담아 ‘반 노무현’ 주자로 보기 어려웠고 2012년 대선 때 불어 닥친 ‘안철수 현상’ 역시 당시 이명박 대통령 심판 바람과는 달랐다. 2017년 대선 국면에 나선 반기문 전 유엔총장은 반 박근혜가 아니라 기존 보수층의 대안 주자에 가까웠다.
하지만 윤 총장 지지율은 이와 결이 다르다. 10%선이었던 머물렀던 윤 총장의 지지율은 현 정부와 갈등이 고조된 지난달부터 급격히 치솟아 20% 중반까지 올랐다. 콘크리트로 여겨졌던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40%가 무너진 것과도 맞물렸다. 그간의 제 3후보바람이 기성 정치판에 대한 염증과 신선한 인물에 대한 모호한 기대감에서 비롯됐다면 윤 총장 현상은 정권심판이란 분명한 목표와 타깃을 갖고 있는 것이다.
기존 제3후보들이 뜬구름식 지지율에 그쳤던 점에 비춰 여권에서 나온 얘기가 ‘윤나땡’(윤 총장이 출마하면 땡큐)이다. 여권이 윤 총장의 지지율 상승에 속으로 웃고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의 한 전직 의원은 “윤 총장 지지율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 변수는 반문 정서가 계속 쌓이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정권의 실기로 윤 총장 지지세가 계속돼 출마로 이어지면 그만큼 정권심판론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윤나땡’이야말로 나이브한 인식이다”고 경고했다. 요컨대 윤 총장이 상황을 오판해 정치적 야심만으로 출마하면 실패의 전철을 밟기 십상이다. 하지만 정진석 의원 말마따나 비등한 정권심판론 위에 올라 탄 기호지세(騎虎之勢)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실제 윤 총장이 반문 정서를 등에 업고 대선에 뛰어든다면 국민의힘 주자로 나설지, 아니면 제3지대에서 머물다 국민의힘 후보와 단일화할지도 관전 포인트다.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국민의힘에 입당하면 경선을 치러야 하는데, 조직과 정치 경험이 없는 윤 총장이 이를 통과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며 “제3지대에 머물다 야권 단일화를 시도할 것이다”고 내다봤다. 윤 총장이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칼을 들이 댄 전력으로 인해 보수 후보로 인정받을지도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윤 총장의 구심력이 커진다면 국민의힘을 포함한 야권이 윤 총장 중심으로 재편될 수 있다. 홍문표 국민의힘 의원은 “현직 검찰총장이 대선주자 1위에 오르는 전례 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현 정권에 분노한 민심 때문이다”며 “그 민심이 지속된다면 우리당이 그런 후보를 외면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부친이 충남 공주 출신인 윤 총장의 지역적 배경을 바탕으로 국민의힘의 충청권 의원들이 윤 총장의 지원군이 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다만 윤 총장의 구체적 출마 시나리오를 예측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의 출마 여부조차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만약 출마하는, 혹은 출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그의 의지와 무관하게 대선의 갈등 수위는 극도로 고조됐을 터다. ‘조국 대전’ ‘추윤 갈등’ 국면에서 벌어졌던 진영간 상반된 프레임이 격렬하게 충돌할 것은 불문가지다. 한국 정치는 또 다른 불행한 역사의 서막을 여는 것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