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총 하나로 전쟁을 흔든 저격수

입력
2020.12.1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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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7 '하얀 사신' 시모 해위해


저격수가 주인공인 소설과 영화가 많은 이유는 전쟁(교전) 상황에서 저격수의 위력과 존재감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빼어난 저격수는 장판교의 장비 같은 활약을 할 수 있다. 삼국지연의의 장비는 혼자 조조군 5,000명의 진군을 저지했다. 현대전 연대급(약 3,000명) 이상의 부대를 상대했다는 얘기다. 1939년 12월 7일부터 이듬해 3월 13일까지 105일간 치러진 핀란드·소비에트 전쟁(일명 겨울전쟁)의 핀란드군 저격수 시모 해위해(Simo Häyhä, 1905.12.17~ 2002.4.1)의 활약이 가히 그러했다.

그가 실제로 전투에 임한 기간은 채 100일이 안 된다. 하지만 그는 핀란드군 공식 집계 219명을 소총으로 저격했고, 그에 맞먹는 수의 소련군을 기관단총 등으로 사살했다. 핀란드군 1개 사단이 소련군 4개사단과 1개 전차 여단을 상대한 '콜라 전투(Kollaan taistelu)'에서, 그는 1939년 12월 21일 하루에만 25명을 사살하기도 했다. 소련군은 설상 위장복을 입은 그를 '하얀 사신(White Death)'이라 부르며 그를 잡기 위한 저격 소대를 운용했지만 실패했다.

핀란드 남부 라우턔르비(Rautjärvi)에서 태어나 17세에 징병돼 15개월 의무복무를 마치고 상병 전역한 그는 겨울전쟁에 예비역으로 다시 소집됐다. 뛰어난 사냥꾼이었던 그는 사격 솜씨를 인정받아 저격수가 됐지만, 특이하게도 조준경을 쓰지 않았다. 눈밭의 렌즈 반사광 때문에 위치가 노출될 수 있어서였다. 그는 입김을 감추기 위해 눈을 입에 머금고 저격했고, M28 소총 총렬 아래의 눈을 얼음처럼 다져 발포 압력에 눈이 날리는 것을 피했다고 한다. 소비에트군은 백색 위장복을 입지 않은 점은 그에겐 큰 이점이었다.

해위해는 1940년 3월 6일 전투에서 총알 파편에 왼쪽 턱을 관통당하는 중상을 입었지만, 1주일 뒤 평화조약으로 전쟁이 끝났다. 그는 5계급 특진한 소위 계급장을 달고 제대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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