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플랫폼 횡포에 만능 해결사? 박영선이 꽂힌 '프로토콜 경제' 뭐길래

입력
2020.12.1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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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 장관, 플랫폼 부작용 해법으로 언급
플랫폼에 집중된 수익, 정보, 책임 등 참여자에 분산
블록체인 기술 활용하면 현실적 한계 극복 가능

경제계에 ‘프로토콜 경제’라는 낯선 개념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지난달 20일 열린 ‘컴업 2020’ 개막사를 통해 “현재 대세로 군림하고 있는 ‘플랫폼 경제’는 궁극적으로 ‘프로토콜 경제’로 전환될 것”이라고 말한 이후 연일 프로토콜 경제를 강조하면서다.

최근 중기부에 16조8,000억원의 내년도 '슈퍼 예산'이 확정됐을 때도 박 장관은 “글로벌 디지털 강국 도약을 위해 플랫폼 경제에서 프로토콜 경제로의 전환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페이스북을 통해 택배 노동자 문제, 타타 논란, 배민과 소상공인의 상생, 현대차의 중고차 시장 진출 문제, 구글의 인앱결제 수수료 30% 논란 등의 해답을 프로토콜 경제에서 찾을 수 있다고도 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4차산업 시대 미래 경제 갈등의 만능 해결열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대체 프로토콜 경제의 정체가 뭐길래 이토록 주목하는 걸까?

프로토콜 경제는 ‘미래형 협동조합’

9일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프로토콜 경제의 핵심은 거대 플랫폼 사업자가 가진 힘을 특정한 규칙(프로토콜)에 의해 모든 참여자에게 공정하게 나눠주자는 것이다. 여기서 힘은 수익이고, 정보이며, 책임이기도 하다.

최대 화두는 수익 배분이다. 박 장관은 프로토콜 경제의 당위성을 이야기하며 “지휘자만 이득을 볼 게 아니라 연주자한테도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플랫폼 운영자는 판매자나 소비자 등 플랫폼 참여자보다 훨씬 많은 수익을 챙긴다. 수수료는 물론 광고 수익도 막대하다. 전세계 시가총액 상위 10개사 중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구글), 페이스북, 알리바바, 텐센트 등 7곳이 플랫폼 기업인 이유다.

하지만 플랫폼 기업의 성장에는 콘텐츠 제작자(유튜브), 차량 소유자(우버), 부동산 공유자(에어비앤비), 상품 판매자와 택배기사(쿠팡), 식당 주인과 배달 라이더(배달의 민족) 등 다양한 이들이 기여한다. 하지만 이들은 기업가치 상승분을 공유할 수 없다. 여기서 논란이 싹튼다.

반면 프로토콜 경제에서는 기여도에 따라 긱 노동자(배달, 대리운전 등 온라인 중개 플랫폼을 통해 일을 얻는 임시 계약 노동자)와 플랫폼 참여자도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이는 어쩌면 인류의 가장 오래된 경제 조직인 협동조합의 모습과 닮았다. 블록체인 기반 기술기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 ‘해시드’의 김서준 대표는 “프로토콜 경제는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자본주의의 효율성에 밀려버린 협동조합을 부활시키는 경제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배민’에 등록된 식당 주인도 주문 건수, 소비자 만족도 등을 기준으로 우아한형제들의 주식을 지급받는 식이다.

실제로 미국에선 플랫폼 기업이 참여자들과 성장의 과실을 나누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2018년 우버와 에어비앤비는 플랫폼 노동자에게 주식을 줄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금융당국에 요청했고, 최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연봉의 15%를 주식으로 지급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블록체인 기술의 잠재력

하지만 수많은 우버 드라이버에게 주식을 지급하려면 1인당 수십장의 서류가 오가야 할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블록체인 기반 번역 플랫폼을 운영하는 보이스루의 이상헌 대표는 “프로토콜 경제에서는 각 플랫폼에서 가치 변동성이 적은 암호화폐(스테이블 코인)를 발행하고, 이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성과를 공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텔레그램을 비롯한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은 자체 암호화폐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은 잘만 활용하면 플랫폼이 독점하는 자본, 정보, 권력을 분산시키는데 유용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 의견이다. 예를 들어, 최근 현대차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두고 기존 중고차 거래업체와 빚는 갈등도 해결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현재 갈등의 핵심은 현대차라는 거대 자본이 기존 중고차시장 생태계를 집어삼킬 것이라는 우려다. 이에 대해 현대차는 전체 중고차 거래의 20%를 넘지 않겠다고 설득하지만, 현대차가 거래 정보를 독점할 경우 점유율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상헌 대표는 “모든 차량에는 고유 번호가 있기 때문에 블록체인으로 차량 거래 정보와 수리 내역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면 중고차 시장의 불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플랫폼 경제 대체할 수 있을까

다만 전문가들은 박영선 장관의 말처럼 플랫폼 경제는 프로토콜 경제로 완전히 전환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말한다.

유튜버로 활동하는 지한송 회계사는 “유튜브라는 거대한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선 여전히 막대한 자본이 필요할 것이고, 조합원의 자본만으로 이런 플랫폼을 구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상헌 대표 역시 “우리는 플랫폼 경제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우선은 사람들이 작은 것부터 프로토콜 경제를 더 많이 경험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닦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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