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이 활약하는 영국 프로축구 프리미어 리그 경기를 제대로 즐기려면 이제 유료 방송채널에 가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함에 따라 넷플릭스가 극장을 대신하고 있다. 요즘 출시되는 승용차에는 CD 플레이어가 없어 라디오 외에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유료로 음원을 구입해야 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처럼 스포츠, 영화, 음악을 감상하기 위해 직접 돈을 지불하는 것이 일상이 되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저작권권리단체연맹(CISAC)의 2019년 연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저작권 징수금액은 음악저작물의 경우 1억5,800만유로(1유로당 한화 1,300원 기준, 약 2,054억원)로 세계 11위에 해당한다. 국민 1인당 징수금액은 3.19유로(한화 약 4,250원)로 세계 31위다. 국민총생산량(GDP)에서 저작권 징수금액이 차지하는 비율은 0.011%로 세계 평균 0.014%에 미달하는 세계 45위다.
최근 타결된 아시아·태평양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통해 우리 정부는 K팝으로 대표되는 우리의 문화·지식산업의 수출을 획기적으로 늘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런데 저작권 보호를 전제로 하는 대외무역 전략의 이면에 국내 저작권 보호 수준이 세계 평균에 미달하며 경제 규모에서 우리보다 훨씬 작은 남미의 콜롬비아, 아프리카의 지부티와 어깨를 견줄 정도라는 사실에 낯이 뜨거워진다.
아마존은 자사 사이트의 트래픽을 늘릴 방편으로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미식축구(NFL)의 독점 중계권을 따냈고, 페이스북은 전미농구(NBA) 중계권을 거액에 사들인 지 오래됐다. 비싼 유료방송 수신료 부담 때문에 TV에서 시청하고 싶어도 보기 힘든 스포츠 중계방송을 아마존 사이트에서 볼 수 있으니 수많은 사람이 아마존 회원에 가입한다. 아마존 사이트에서 미식축구 경기를 보는 중에 하다 못해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의 셔츠나 모자를 구입하지 않겠는가. 이 대목에서 아마존 창업자 베이조스가 했다는, "신발을 팔기 위해서라도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은 섬뜩하게 다가온다.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스포츠, 영화, 음악 등, 이른바 킬러콘텐츠가 방송산업, 자동차산업, 심지어 아마존,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IT 기업을 움직이고 있다. 이는 거대한 유조선의 방향을 결정하는 작은 방향타와 같다.
우리 경제는 이미 중후·장대형 산업에서 문화·지식산업 등 소프트산업 쪽으로 방향을 튼 지 오래됐다. 성장엔진은 그쪽으로 가고 있는데 저작권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과거에 맴돌고 있다.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고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해 창작자 보호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