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 없는 작은 섬나라

입력
2020.12.1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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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0 사크섬 주민들의 첫 공화정 선거


유럽 최후의 봉건 자치령이던 영국해협 채널제도의 사크(Sark)섬 주민들이 2008년 12월 1일 주민 대표를 뽑는 첫 의회 선거를 실시했다. 1565년 엘리자베스1세 여왕이 귀족 40명에게 섬을 하사한 지 443년 만이었다. 지주들은 땅을 사고 팔며 번갈아 영주로 군림해 왔고, 1852년 인근 건지섬의 한 부호가 섬을 사들인 뒤 입법권을 포함한 자치권을 지닌 봉건 장원 체제를 유지해 왔다. 외부 자본이 관광 등 목적으로 땅 일부를 사들이거나 임차해 호텔 등을 짓기도 했다. 그 섬이 유럽인권협약과 영국 추밀원의 승인을 받아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하는 첫 선거를 치른 거였다.

섬 주민 600여명 중 유권자는 약 475명. 그 중 12%인 57명이 총 28명을 뽑은 의회 선거에 입후보했다. 개표 결과 개혁 찬성파 의원 23명과 반대파 5명이 당선됐다. 그들은 제비 뽑기로 임기 4년과 2년인 각 14명의 상하원 의회를 구성했다. 외부 투자자로 호텔과 상점 등을 운영하던 바클레이 형제는 자신이 지지하던 후보가 5명밖에 선출되지 않은데 항의해 사업 일체를 철수하면서, '민주주의'의 대가로 전체 주민의 약 17%인 100명가량이 졸지에 실업사태를 맞는 후유증을 겪기도 했다.

면적 5.44 km2의 사크섬은 오직 배로만 해협 너머의 노르망디나 인근 섬, 영국으로 이동할 수 있으며 자동차도 법으로 금지돼 트랙터와 말이 끄는 마차가 주요 이동수단이다. 2011년 섬 자치정부는 '빛 공해 없는 공동체(Dark Sky Community)'를 선언, 중세의 타임캡슐 같은 풍광과 함께 별빛이 살아 있는 지구의 변방으로 스스로를 치장했다.

근년의 섬 인구는 약 500명. 독일의 한 사업가가 2004년 설립한 단체 '사크 소사이어티'는 지난해 8월 섬 주민 500명 추가 유입 캠페인을 시작하며 '소득세도 자본세도 상속세도 부가가치세도 없는 섬'을 자랑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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