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50년 ‘탄소 중립(Net-Zero)’ 사회를 달성하겠다며 7일 내놓은 탄소중립 추진전략은 에너지와 수송, 산업 등 기존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뒤흔들어야 하는 중장기 과제다. 하지만 이날 발표한 과제에는 탄소세 도입 여부 등 구체적인 민간의 부담이나 내연기관 자동차 감축 로드맵 등 구체적 내용들이 모두 빠져 있다.
정부가 내년 6월까지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한 여러 시나리오를 만든 뒤, 이를 중장기 국가계획에 반영하려면 본격적인 시행은 빨라야 2022년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쌓여가는데, 문재인 정부는 한국판 뉴딜과 탄소 중립 등 차기 정권에서나 결실을 볼 가능성이 있는 중장기 과제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는 세제와 부담금, 배출권 거래제 등을 개편해 탄소 가격에 따른 부담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여기에는 탄소세 도입이나 전기요금 인상, 탄소를 고려한 예산 편성 기준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이런 가격 결정 체계에 대한 구체적 실행방안은 언급하지 않은 채, 내년 중 연구용역을 통해 제도 개편 방안을 검토하겠다고만 밝히고 있다. 전기 요금도 “유연하고 합리적인 요금 체계를 마련하겠다”는 것이 전부다. '세제나 부담금은 민감한 문제인 만큼 기후변화 대응뿐 아니라 소득분배, 물가, 산업경쟁력 등 다각적인 영향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가 구체적 내용을 밝히지 않은 이유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세제나 부담금 체계 전반에 대해 ‘가격 시그널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검토하겠다는 큰 전략과 방향을 말씀드린 것”이라며 “탄소세 도입 여부나 경유세 인상 여부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저탄소 전환에 따른 비용, 탄소 중립을 위한 정부의 부담 등에 대한 구체성도 떨어진다. 경제 구조를 바꾸고, 저탄소 산업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거창한 선언은 있지만 이를 위한 추진 전략은 '수박 겉핥기'식 나열에 불과하다. 정부가 밝힌 방안은 '에너지 공급 방안을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 거나 '철강과 석유화학 등 탄소 배출이 많은 산업의 저탄소 전환을 촉진하겠다'는 선언적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는 앞서 지난달 대통령 직속 국가기후환경회의가 발표한 '중장기 정책 제안'과 비교해도 한참 뒤떨어진 대책이다. 국가기후환경회의는 당시 제안에서 휘발유와 경유 가격을 점진적으로 100대 100수준으로 조정하고, 2035년이나 2040년에는 무공해차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차량만 신차로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등의 로드맵을 건의했다. 하지만 이번 전략에는 이런 구체적 과제들조차 담기지 않았다.
정부가 내놓은 비전은 올해 말까지 정부 차원의 2050년까지의 저탄소 발전전략(LEDS)을 제출해 달라는 UN의 요청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내년부터 전략을 ‘시행’하는 것이 아닌 ‘시행 방안을 마련’하는 데 집중돼 있고, 구체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의 ‘정책 캘린더’는 △탄소중립 시나리오 마련(2021년 6월) △핵심정책 추진전략 수립(2021년) △중장기 국가계획 반영(2022~2023년)으로 구성돼 있다. 일정이 공개된 31개 주요 정책 중 절반 이상인 16개가 3~4분기로 예정돼 있다. 그나마도 대부분의 계획은 ‘전략 마련’과 ‘로드맵 수립’이다.
구체적인 정책을 착수하는 시점은 2022년 이후로 넘어간다. 이는 올해 발표했던 한국판 뉴딜이나 재정준칙 도입 방안처럼 이번 정권에서 계획만 세운 채 부담은 다음 정권에 떠넘기는 셈이 된다.
앞서 발표한 한국판 뉴딜은 정부 예산 114조1,000억원 중 절반이 넘는 65조1,000억원 규모의 사업을 2022년 이후 진행할 예정이다. 재정준칙은 올해 도입 방안을 마련하지만, 적응 기간을 고려해 2025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