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째 이어온 영어 헌책방… “난 문화전파상”

입력
2020.12.05 04:20
14면
<48>서울 용산구 ‘포린북스토어’ 
 앙드레김에게 미국 백화점 카탈로그 납품 
세운상가엔 소니·파나소닉 일본 전자제품 소개 
“선진 문물 소개하는 문화전파상 역할” 자부



“명동에서 의상실을 하던 앙드레김에게도 미군부대에서 나온 백화점 카탈로그를 팔았어. 세운상가엔 전자제품 카탈로그를 보냈고. 1970년대는 우리나라가 쑥쑥 크던 시절이었거든. 물건은 만들어야 하는데 참고할 견본이 없었던 거야.”

지난 1일 서울 용산구 '포린북스토어'에서 만난 최기웅(78) 사장은 “우리나라 제품 발전에 작게나마 일조한 것 같다”며 50년 가까이 영어 헌책방을 운영해 온 지난날을 회상했다. 1973년부터 지금까지 이태원 인근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앞에서 자리를 지켜온 포린북스토어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외국책 헌책방이다.

2015년 서울 미래유산으로도 선정된 17평(56㎡) 남짓 좁은 공간엔 10만권의 책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여행책 론니플래닛부터 시작해 존 그리샴ㆍ시드니 셀던 등 유명작가의 소설과 일본 만화인 드래곤볼 영문판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출입구 차양에 적힌 ‘We Buy, Sell and Trade All Kinds of books’(모든 종류의 책을 사고, 팔고, 교환합니다) 문구는 괜한 말이 아니었다. 노포에서 흘러나오는 올드팝은 이곳의 분위기와 제법 잘 어울렸다.


꿀꿀이죽 먹으며 전국 미군부대 찾아다녀

스스로를 “문화 전파상”이라고 소개한 최씨가 영어책과 인연을 맺게 된 건 196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트남 파병을 앞두고 한 신체검사에서 폐결핵 판정을 받았어. 만기 36개월 중 30개월만 근무하고 의병제대를 했지. 그런데 어머니까지 쓰러지신 거야. 무작정 일거리를 찾아야 했어.”

삼각지 인근 고물상에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책과 잡지가 잔뜩 쌓여 있는 것을 보고 23세의 최씨는 이걸 내다 팔기로 했다. 당시만 해도 외국 서적이 매우 귀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책을 구하기 위해 경기 파주 판문점부터 부산까지 미군부대가 있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고물상과 쓰레기장을 뒤졌다. 지금은 흔한 나일론 끈조차 구하지 못해 미군이 쓰던 붕대로 끈을 만들어 책을 옮겼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음식 찌꺼기를 모아서 끓인 꿀꿀이죽도 많이 먹었지. 지금 생각하면 창피하지만 그땐 그게 보약이었어.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흙과 돌을 빼곤 다 쓸모가 있던 시절이었지.” 그렇게 수거한 책을 명동과 종로에 있는 서점에 팔았다.

수집 일이 없는 야간엔 노점을 차려 직접 헌책을 팔았다. 그의 노점은 종로2가 화신백화점 부근 골목이었다. 드럼통 뚜껑으로 바퀴를 만들어 덜덜 소리가 나는 손수레 ‘딸딸이’를 끌고 다니며 노점 단속을 피했다. 당시 짜장면 한 그릇 값인 150원에 책을 팔았다. 최씨는 “하루에 200~300권씩 팔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고 말했다. 처음엔 이발소와 쌀집, 군밤장수 등이 헌책을 사갔다. 종이 질이 좋아 면도칼을 닦거나, 봉투를 만들기 수월했기 때문이다. 그가 팔던 라이프, 포스트 등 미국 잡지는 좀처럼 보기 힘든 책이었다. 최씨는 “입소문이 나면서 대학생들도 찾아왔는데 특히 이화여대 영문과 학생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플레이보이ㆍ러브스토리ㆍ카탈로그로 '대박'

미국 남성 월간지 ‘플레이보이’도 불티나게 팔렸다. 그보다 더 ‘대박’을 친 건 소설책 ‘러브스토리’였다. 1971년 영화 러브스토리가 개봉하기 전 최씨는 미군부대에서 구한 원서로 복사판을 만들어 명동과 종로 등에서 팔았다. “명동의 택시정류장에서만 하루에 300권씩 팔았어. 원가가 150원 남짓 든 걸 700원에 팔았으니 돈도 제법 벌었지.” 지금처럼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던 시절이었다.

미군부대 매점(PX)에서 흘러나온 각종 카탈로그 역시 히트상품이었다. 소니와 파나소닉 등 일본 전자제품 소개가 가득한 카탈로그는 세운상가에 팔았다. 이제 막 제조업이 싹을 틔우던 1970년대, ‘카피캣 전략’을 내세운 한국 산업계에 외국 제품 카탈로그는 좋은 길라잡이였다. 구두ㆍ양복 등 미국 백화점에서 나온 카탈로그는 서울 곳곳의 대표 양장점과 의상실에 납품했다. 당시 명동에서 가게를 운영하던 앙드레김도 그의 고객 중 한명이다. 최씨는 “외국의 선진 문물을 소개하는 문화전파상 역할을 했던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장관ㆍ경찰청장 등 유명인사도 들락날락

그러나 그가 순탄한 길만 걸은 건 아니다. 플레이보이와 러브스토리, 각종 카탈로그 등을 팔아 모은 돈으로 1970년대 초반 제본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1차 석유파동이 불어 닥쳤다. 물가가 치솟으면서 빚더미에 앉았다. 서울역에서 노숙까지 했다.

미군부대 근처에서 포린북스토어를 연 뒤 한 번 더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번엔 영어 만화 단행본을 만드는 일이었다. 최씨는 1981년 12월 ‘세계코믹컬렉션 1집’을 냈다. 플레이보이 같은 해외 각 잡지에 실린 네 컷 만화 등을 엮어 버스정류장 판매대에서 팔았다. “책이 제법 팔리니까 선데이서울 등 신문사에서 아예 일본 만화책을 복사해 비슷한 단행본을 속속 내기 시작한 거야.”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그는 버티지 못했다. 2집을 내지도 못한 채 사업을 접었다. 이후엔 서점 운영에만 전념했고, 살림방이 딸린 이 책방에서 그는 딸 셋을 키워 대학원까지 보냈다.


역사ㆍ철학ㆍ심리학ㆍ사회과학ㆍ패션 등 다양한 분야의 최신 서적을 취급했던 포린북스토어에는 유명 인사들도 곧잘 들렀다. 한국일보 출신으로 국회의원과 노동부 장관을 지낸 남재희 전 장관은 언론사 기자ㆍ주필 시절 1주일에 2, 3번씩 이곳을 찾았다. “칼국수를 좋아해서 같이 많이 먹었어. 정치학과 사회과학, 세계정세에 관한 책을 주로 읽더라고.” 도올 김용옥 선생, 이팔호 전 경찰청장도 이곳을 자주 들락날락했다.


"책이 사람을 만든다"

긴 세월을 견뎌온 포린북스토어는 그러나 최근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기자가 취재를 마친 오후 5시30분까지 이곳을 들러 책을 사간 사람은 4명이 전부다. 최씨는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책방을 찾는 사람이 급감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리나19)까지 겹쳐 아주 죽을 쑤고 있다. 국제금융위기(IMF) 때보다 더 어렵다”고 말했다. 그래도 “할아버지ㆍ할머니가 돼 손주와 함께 이곳을 찾는 단골을 마주하거나, 필요한 사람에게 전해달라며 해외 원서를 기부하는 외국인 친구들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는 그는 “지금 이대로 책과 함께 삶을 차차 정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50년 넘게 영어책을 취급한 최씨는 걸어온 길을 꽤 자랑스러워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긍지와 사랑, 관심을 가지면 무슨 일을 하든 성공한 삶”이라고 설명한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소각장에서 사라져버릴 수 있는 헌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전해주고, 새로운 지식과 문화가 흘러갈 수 있게 다리를 놓아줬잖아. 돌이켜보면 제법 괜찮은 일을 해온 것 같아.”

반평생 넘게 책을 팔면서 챙긴 깨달음도 적지 않았을 터, 팔순을 바라보고 있는 노신사는 한 마디 붙였다. “책을 많이 본 사람들은 절대 실패를 안 해. 책에서 간접경험을 많이 하니까. 그리고 무슨 책을 읽을지 모르겠다고? 그렇다면 클래식(고전)을 보는 게 좋아. 거기엔 살아가는 데 필요한 처세술과 삶을 대하는 태도, 주옥 같은 문장이 다 들어 있어. 사람이 책을 쓰지만 책이 좋은 사람을 만드는 거야.”

변태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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