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8년 뒤에야 그릴 수 있었다 "합법화, 여성들의 죽음을 멈추는 일"

입력
2020.12.0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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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임신중지 이야기' 오드 메르미오 인터뷰

프랑스 만화가 오드 메르미오는 2012년 임신했다. 자궁 내 피임기구를 삽입하는 루프 시술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0.6%에 불과한 실패 확률로 인해 벌어진 일이다.

프랑스는 1975년 시몬 베유 당시 보건부 장관 재임 때 임신 12주 이내 임신중지가 합법화됐다. 오드는 “낳을 수 없고, 낳고 싶지 않아서” 낙태를 선택하지만, 실제 임신중지의 과정은 고통과 외로움, 낙인과 침묵에 둘러싸이는 일이었다. 8년 뒤 고통의 터널을 빠져나온 오드는 그때의 경험을 기록하기로 결심한다. 그래픽 노블 ‘나의 임신중지 이야기’는 그렇게 탄생했다.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는 인공 임신중절을 처벌하는 형법 제269조 1항과 제270조 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리며 오는 이달 31일까지 새 입법을 주문했다. 그리고 지난 10월, 정부는 임신 14주 이내까지만 임신중지를 합법화하는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낙태죄를 둘러싼 오랜 논쟁에 최종 마침표를 찍을 기한이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았다. 한국보다 45년 앞서 임신 12주 이내 낙태를 합법화한 프랑스의 현실을 통해, 우리가 맞닥뜨릴 미래를 그려볼 수 있을까? 최근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만난 오드는 "낙태 합법화는 '아이들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죽어가는 것을 멈추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임신 중지 주수 제한, 가난한 여성들에게 특히 불리

-프랑스는 1975년 12주이내 임신중지를 허용했고, 최근에는 주수 제한 없이 임신 중지를 무기한 허용하는 생명윤리법 개정안이 하원을 통과하기도 했다. 낙태 합법화에 주수 제한을 둘 것인지의 문제는 한국에서도 논쟁 중인 사안이다.

"캐나다의 경우 임신중지에 주수 제한이 없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이 임신 14주 이내 낙태를 하길 원한다. 매우 소수만이 그 이후 임신 중지를 선택하는데, 의료기관 접근이 용이하지 않는 등 사회 경제적, 지리적인 이유 때문이다. 실제로 임신중지를 늦게 하는 여성 대부분은 가난한 이들이다. 프랑스처럼 임신중지를 14주 내로 제한하는 것은 이처럼 가난한 여성들에게 특히 불리하다.

물론 태아의 생존 한계는 24주에서 26주로 추정되며 일부 국가에서도 이 시기 이후 임신 중지를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임신 중지 주수 제한 기간이 늘어난다고 해도 늦은 임신중지가 크게 증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낙태를 원하는 여성들은 가급적 빨리 임신을 중지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심각한 장애는 대개 20주 이내 초음파 검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어 24주 이전이면 임신 중지가 가능하다. 주수 제한이 없는 캐나다의 경우에도 태아의 기형을 늦게 발견하면 일부 의료기관에서 26주에서 32주 내에 조산을 유도한다. 이 경우 모르핀이나 진통제를 투여해 태아가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한다.

임신 중지 동기에 대한 제한 역시 없어야 한다. 한 여성이 시민이라면, 그녀가 자신의 임신 중지 동기에 대해 정당화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투표를 하는지, 어떤 종교활동을 하는지, 이를 정당화할 필요가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1975년 합법화된 프랑스…의료기관 접근성은 후퇴, 낙인도 여전

-합법적인 임신 중지 시술이 가능해지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프랑스는 임신 12주 이내 합법적 임신중지의 경우 비용을 국가가 전액 지원하는 것으로 안다. 반면 여전히 임신 중지 시술에 대한 의료기관의 기피와 사회적 낙인도 공존하고 있다고 들었다.

"관련 법안은 유지되고 있지만 오히려 임신 중지에 대한 접근성은 후퇴하고 있다. 1975년 임신중지 합법화를 위해 싸웠던 의사들은 대부분 은퇴했고, 그들의 정신을 이어받는 다음 세대의 수도 많지 않다. 실제 많은 의사들이 ‘양심 조항’ 권리를 행사하며 낙태 시술을 거부하기도 한다. 프랑스는 법적으로 의사의 의료행위 거부권 행사가 보장되는데, 낙태의 경우 이 거부권 행사가 법에 한번 더 명시돼 있다. 만일 낙태를 원하는 여성이 대도시에 살고 있지 않고, 인근 의료기관의 의사가 시술을 거부한다면 낙태를 위해 먼 길을 떠나야만 한다.

또한 주변의 평가에도 시달려야 한다. 예를 들어 두 번째 임신 중지 시술을 하려는 여학생의 경우 경솔하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그녀가 다른 사람보다 임신이 잘 되는 경우일 수도 있고, 피임약을 복용하고 루프 시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임신이 됐을 수도 있다. 30대 여성이 아이를 키울 능력이 있는데도 임신을 중지한다면 이기적이라는 말을 들어야 한다.

낙태에 대한 반대보다 찬성이 사회적으로 더 용납되기는 하지만, 이에 대해 많이 이야기 하지는 않는다. 심리적 지원도 적은 편이고, 터부시하는 분위기도 여전히 존재한다. 게다가 임신중지가 실패(혹은 곤경)이 아니라는 것을 여전히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모든 종류의 피임약, 기구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해도 아직 아이를 가질 준비가 되지 않은 여성들이 언제나 존재할 것이다."

낙태는 사소한 일이 아니다

-만화에서는 수술 시간은 짧지만 매우 고통스러운 임신중지 과정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낙태가 합법화될 경우 여성들이 함부로 임신중지를 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함부로’ 하기에 낙태는 여성의 몸에 치명적인 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임신중지는 여성에게 ‘어떤 일’인가

"어떤 여성도 임신중지를 간단한 피임방식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임신 중지 경험이 있어야 한다. 임신중지 과정은 길다. 여러 번의 진료를 받아야 하며, 약을 복용해야 한다. 사회적 시선뿐 아니라 육체적 고통도 따른다. 여성들이 함부로 임신중지를 실행할 것이라는 우려는 관련 여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이는 여성이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하며 여성을 유아화하는 사람들의 우려다.

낙태는 아무것도 아닌 일, 사소한 일이 아니다. 일부 여성들에게는 애도를 표해야 하는 죽음일 수도 있고, 다른 일부에게는 어떤 속박(혹은 제약)일 수도 있다. 그러나 평생 짊어져야 하는 드라마로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가까운 사람을 잃는 것 같은, 이별과 같은 시련이며, 인생에서 거쳐가는 하나의 일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증언'과 '연대'로서의 ‘낙태 경험 말하기’

-한국에서도 성관계 경험이 있는 여성 10명 중 1명이 낙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여전히 이를 꺼내 말하기는 쉽지 않다. 최근 한국에서는 이러한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SNS에 ‘#나는_낙태했다’는 해시태그와 함께 낙태 경험담을 공유하는 운동이 일기도 했다. 당신 역시 낙태 경험을 만화로 풀어내기까지 8년이 걸렸다. 임신 중지 경험 말하기는 왜 중요했는가

"8년이 지났기 때문에 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많이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슬픔은 이미 지나갔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내 경험을 말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극복하며 살아간다. 나는 불행하지 않기 위해 1년을 노력했고, 내 아이가 어떻게 생겼을지 상상하기를 멈추는 데 3년이 걸렸다. 그 사건은 여전히 내 삶에 존재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평화롭게 받아들이고 있다.

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임신 중지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많은 여성들은 낙태를 했거나, 현재 낙태를 하거나, 곧 낙태를 할 것이다. 이때 앞선 증언들은 큰 도움이 된다. 나 역시 독자들로부터 감사의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낙태, 여성들의 죽음을 멈추는 일


-한달 여 뒤면 한국은 66년 만에 법 테두리 안에서의 임신중지 시술이 가능해지게 된다. 우리 사회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사람들이 합법적 임신 중지를 왜 불편하게 바라보는지 정직하게 살펴봐야 한다. “태아도 생명이다”라는 주장은 때로는 실제적이지만, 이는 여성의 자율권에 대한 불안을 숨기고 있다. 여성은 항상 가부장적 사회에서 통제되고 있고 변화는 두려움을 동반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우리가 아는 범위에서 머무르려 한다.

그러나 여성은 언제나 낙태를 해왔다. 그리고 여성들은 그것 때문에 죽어왔다. 낙태를 합법화하는 것은 '아이들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죽어가는 것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이는 여성들과 커플들에게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여성, 젊은 세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신뢰해야 하며, 과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어떤 여성도 임신 8개월 차에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산부인과에 가지는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여성들에게 용기와 힘을 북돋아주고 싶다. 사회의 진보를 위해 노력하며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딸들과 어머니를 위해 싸우는 것에 감사드린다. 고통은 평생 지속되지 않는다. 그녀들은 선택을 했고, 그것에 대한 권리가 있다. 아무도 그들에게 반대의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김샛별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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