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은둔형 외톨이가 되지 않으려면

입력
2020.12.0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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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유명한 대중 작가인 오쿠다 히데오의 한 장편소설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등장한다. 주인공인 50대 남성은 출세 가도를 달려 왔지만 곧 은퇴를 앞두고 있다. 은퇴 이후에는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협동조합에서 일하고 있는 부인을 따라 주말 자원봉사에 나서게 된다. 그러나 주인공은 활동 시간 내내 기분이 좋지 않다. 사람들이 자신을 회사에서처럼 깍듯하게 대접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급기야 “내가 어떤 사람인 줄 알아? 내가 어떤 사람인데!”라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부인마저 난처한 상황을 만들고 만다.

은퇴에 동반되는 크나큰 변화 중 하나는 기존 인간관계의 단절이다. 이것은 인간관계의 변화라고 부드럽게만 기술할 수 없는, 그야말로 ‘단절’이다. ‘단절’된 인간관계를 메우기 위해서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다양한 배경과 태도로 인해 우리는 심리적인 낯섦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은퇴는 자신의 생활 세계가 다른 차원으로 통째로 이동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앞의 소설과 같이 위계질서가 견고한 직장에서 오래 근무한 이들은 이 심리적인 낯섦을 극복하기가 더욱 어렵다.

은퇴 후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 혹은 받아들이기 싫은 이들은 새로운 친구 만들기를 포기하고 집에서 은둔한다. 그러나 집이라고 쉽겠는가. 가족 내 역할 분담에서 역할 공유로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지만 2018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65세 이상 연령층에서 부부가 공평하게 가사를 분담한다는 비율은 16.4%에 불과하다. 33.5%는 부인이 집안일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다고 답했다. 같은 조사에서 ‘낙심하거나 우울해서 이야기 상대가 필요한 경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비율은 40대와 50대에서는 각각 15%와 18%이지만 65세 이상에서는 27%로 늘어난다. 가족 및 인간 관계에 대한 만족도 역시 이전 연령대에 비해 크게 낮아진다.

노력하지 않으면 외로워진다. 달라진 환경을 받아들이고 그간 소홀했던 가족 그리고 새롭게 만들어지는 인간관계에 정성을 다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맞벌이가 당연해진 요즘 서구에서는 부부가 함께하는 공동은퇴(싱크로나이즈드 리타이어먼트: synchronized retirement)가 유행이라고 한다. 제2의 인생기에 부부가 함께 새로운 생활 세계를 만들어 간다면 이것 또한 얼마나 신선하고 멋진 일이겠는가.



성혜영 국민연금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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