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럿의 눈물 "저 하늘 길이 너무도 그립습니다"

입력
2020.12.0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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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날고 싶은 사람들'  ① 고개 숙인 조종사들

편집자주

한국일보가 전직 언론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1회 기획취재물 공모전에서 이준영씨(전 YTN기자)의 '하늘을 날고 싶은 사람들'이 당선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기자직을 그만두고 파일럿의 꿈에 도전했던 이준영씨가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항공업계 및 종사자들의 현실을 4회에 걸쳐 전해 줍니다. 공모전에 참여해 주신 전직 언론인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한국일보는 앞으로도 좋은 콘텐츠에 대해선 문호를 개방하고 공유하겠습니다.

지난 11월 김포-김해 비행기 티켓(주중 편도) 최저 가격은 1만4,000원. KTX의 4분의 1 수준이다. 코로나19로 좌석이 텅 비었지만, 그래도 항공사들은 비행기를 띄울 수 밖에 없다. 오히려 제살깎기식 저가경쟁이다. 항공업계는 지금 고사직전 상태이고, 최대 피해자는 항공 종사자들이다.

한달 일하고 한달 쉬는 LCC 기장 K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50대 중반의 기장 K를 만났다. 여름에 봤을 때보다 주름은 더 깊어졌고 머리숱도 좀 빠진 듯하다. "가을이면 좀 나아지겠지"하며 서로 위로하며 헤어졌는데, 야속하게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요즘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새벽 3시쯤 잠들지만 아침 8시면 눈을 뜬다. 줄곧 TV를 보다가 오후가 되어서야 첫 끼니를 챙겨 먹는다. 이게 하루 중 유일한 식사다. “하는 일이 없어요. 기껏해야 아파트 한 바퀴 도는 정도. 동료 기장들한테 전화해도 다들 집 밖에 안 나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는 7년 전 내가 항공담당기자 시절 만난 저비용항공사(LCC) 기장이다. 3월부터 10월까지 유급휴직을 했다. 조종사는 90일 안에 3회 이상 이착륙을 해야 기종자격이 유지된다. 때문에 두 달 쉬고 한 달은 일을 하도록 회사 측이 조치했다. 월급은 절반으로 줄었고 이착륙비, 해외체류비 등 수당은 사라졌다. 그나마 유급휴직 끝나자 무급휴직이 시작됐다. 지금은 한 달 일하고 한 달 쉰다고 했다. 170만원의 정부 고용지원금마저 11월부터 끊겼다. 이제는 정말 한 달 벌어 네 가족이 두 달을 버텨야 한다.

고통스럽더라도 기다리면 나아진다는 보장만 있으면 좋으련만, 좀처럼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회사 전체 수익의 80%가 30여개 국제노선에서 나왔는데, 끊어진지 오래이고 다시 열릴 기약도 없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는 화물운송으로 3분기 흑자를 냈다지만 LCC는 기종이 작아 여객기를 화물기로 개조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대로 가면 기다리는 건 결국 구조조정 아닐까. “지상직 직원들, 젊은 직원들은 이미 꽤 많이 그만뒀어요. 우리야 막상 회사 나가 봐도 할 게 없으니까….”

K에게도 화려한 시절은 있었다. 공군사관학교 졸업 후 10여년간 군 복무를 하다 항공사에 입사했다. 부기장을 거쳐 기장이 된 지 2년쯤 됐을 때, 중국 항공사로부터 러브콜이 왔다. 당시 항공수요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중국은 자국 조종사가 부족하자 한국의 베테랑 기장들을 거액에 스카우트했다. 그가 중국 항공사에서 받은 연봉은 30만달러, 우리 돈 약 3억5,000만원으로 국내 항공사의 두 배에 달했다. 비행이 많을 때엔 월 4,000만원이 통장에 입금되기도 했다. 현지 숙소 제공은 물론 자녀들의 국제학교 학비까지 지원하는 회사도 있었다. 그야말로 '전성시대'였다.

그러나 대륙의 호의는 오래가지 않았다. 2016년 사드 파동이 터지자 한국 비자 발급 절차를 강화했고 국내 항공사의 전세기 운항을 불허했다. 불똥은 조종사에게도 튀었다. 중국 항공사들은 한국인 조종사들을 대상으로 예고없이 시뮬레이터 평가를 실시, 대거 탈락시켰다. 한국 직원 전원에게 해고 통보를 한 항공사도 있었다. 그는 살아남았지만 혐한 분위기를 견디다 못해 결국 귀국했다. “다행히도 난 곧바로 LCC에 입사했습니다. 중국에서 머뭇거리다 뒤늦게 들어와 어디에도 취업 못하고 1, 2년 넘게 집에서 쉬는 기장들도 많았어요.”

K는 인터뷰 중 잠깐 밖에 나가 바람 좀 쐬자고 했다. 그는 전자담배를 꺼내 피우다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쳐다봤다. 30년 넘는 조종사 인생에서 이런저런 굴곡은 있었지만 이런 최악은 없었다고 했다. “그나마 기장들이야 사정이 나아요. 젊은 부기장들, 자기 돈 들여 미국 가서 조종사 자격증 따 온 사람들, 곧 졸업하는 항공운항과 학생들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는 항공사에 대한 필수공익사업장 지정을 해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진국 중에 항공운수업을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한 나라는 없어요. 노동 3권 다 막아 놓고 파업도 제대로 못하잖아요. 그저 재벌들 배만 채운 거지.” 과거 조종사 파업으로 항공대란이 발생한 이후 항공사는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돼 전면파업이 불가능한 상태다. 파업을 해도 조종사의 80% 이상은 업무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파업 효과가 없다. “김포-김해 티켓이 8,000원까지 떨어진 적도 있습니다. 시외버스요금보다도 싸요. 최저 가격 기준 정도는 만들어 놓아야죠. 필수공익사업장이라면서 가격경쟁은 시장논리에 맡기는 게 말이 됩니까."

내년 봄쯤 다시 만남을 기약하면서 K와 헤어졌다. 10m쯤 걸어가던 그는 다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비행이 절반으로 줄어든 아시아나 부기장 L

아래위 트레이닝복 차림에 검은색 모자,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 그냥 봐도 L이 요즘 어떻게 생활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시아나항공 5년 차 부기장인 그는 일주일째 집에만 있었다고 했다. "요즘은 한번 비행하면 오래 쉬어요. 스케줄이 많이 줄었어요. (휴대전화 달력에 표시된 비행 스케줄을 세며) 하나, 둘, 셋, 넷... 원래는 한 달에 15회 정도 비행했는데 요즘은 일곱 번쯤 나가요."

회사가 보유한 B767기(보잉 제작 항공기) 5대 중 화물기는 1대이고, 나머지는 모두 여객기다. "B767은 원래 국제선도 갔는데 다 막혔으니까 지금은 제주노선만 가요. A320이나 A330기(에어버스 제작 항공기) 조종사들은 수가 워낙 많아 돌아가면서 휴직 중이에요. 회사는 B767 스케줄을 줄이고 A320, A330 스케줄을 조금씩 더 넣고 있어요." 비행 횟수가 줄어든 만큼 기본급은 3분의 1이 줄었고, 수당도 깎였다. 그나마 외국인 조종사들은 지난 8월 대부분 해고됐다. "교관보직을 맡고 있는 B747 조종사를 제외한 외국인들은 다 잘렸어요. 나머지도 결국은 고용계약 해지할 거라고 하더라고요."

사실 조종사 스케줄은 기종에 따라 널뛰기다. '하늘 위 특급호텔'이라 불렸던 A380은 6대 모두 주기장에 방치됐고, 교관 기장을 제외한 A380 조종사 100여명은 5월부터 전원 무기한 휴직에 들어갔다. 지난달까지 정부 고용지원금을 포함해 A380 조종사들이 받은 월급은 300만원 정도였다. 이에 비해 B747 조종사들은 코로나19 이전과 똑같이 정상적으로 비행한다. 월급도 그대로다. 같은 회사 안에서도 기종에 따라 조종사들의 주머니 사정은 천차만별인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회사가 보유한 B747기종이 13대인데 그중 여객기 1대를 제외하면 전부 화물기이죠. 요즘 화물 수요가 많으니까 B747 조종사들은 바쁘죠. 회사에선 A380 조종사들한테 B747로 옮겨 갈 의향이 없는지 물어봤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B747은 노후화되어서 그동안 조종사들이 꺼렸거든요. 기령이 워낙 오래되다 보니까 고장이 많아서 실비행이 훈련을 위한 시뮬레이터 비행 같다고들 했어요. 실제로 비행 중에 엔진이 고장 난 사례도 몇 번 있었고요. 그런데 지금은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요즘 B747 기장들 보면 어깨가 엄청 올라가 있어요."

참고로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반세기동안 '하늘의 여왕'으로 불렸던 B747은 2개의 통로와 2층 좌석 구조를 갖춘 첫 제트 여객기로 최대 승객 500여명을 태울 수 있는 초대형 항공기다. 1973년 대한항공이 국내 처음 들여왔고 이듬해 세계 최초로 화물 노선에 투입됐다. 2005년 에어버스가 800여명을 태울 수 있는 A380을 출시하면서 세계 최대 여객기 타이틀을 넘겨주게 됐다. 전 세계 항공사들은 오래된 B747기를 모두 퇴역시키는 추세며 국내 대형항공사들은 주로 화물기로 사용 중이다.

그는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일단은 회사가 생존할 수 있게 됐으니까 다행이죠. 하지만 당장은 아니더라도 결국은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냐며 다들 불안해하고 있어요.”

이스타항공에서 해고된 전직 부기장 C

C는 이스타항공 전직 부기장이다. 미국 비행학교에서 2년 동안 사업용 조종사와 교관 자격증을 취득한 뒤 2017년 입사했다. 약 2,000시간을 비행했다. 그를 만나러 서울 방화동 아파트를 찾아갔다. SNS 사진 속 그는 탄탄한 근육질 몸매를 뽐내고 있었지만, 지금은 제법 몸에 살집이 오른 상태였다. “할 일이 없고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계속 먹게 되더라고요. 요즘은 정신 차리고 덜 먹고 있어요.”

그는 9월 10일 회사로부터 일방적 해고통보를 받았고, 한 달 뒤 부기장 80여명과 함께 회사를 나왔다. 부양가족이 없는 사람이 해고대상이었다. “기장, 부기장 각각 120명씩 있는데 30명씩 빼고 다 잘렸어요. 부기장은 결혼하고 자녀까지 있는 사람만 남았어요. 기장은 과거 사고이력이 있는 사람 위주로 잘랐다고 하더라고요.”

그가 마지막으로 월급을 받은 건 지난 2월이었다. 평소보다 40% 줄어든 금액이었다. 회사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직감했다. 이후 9개월 치 월급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체불임금이 약 4,000만원, 퇴직금 2,000만원도 못 받고 있다.

유독 굴곡이 많았던 이스타항공이었다. 이스타항공은 2018년 말 보잉의 새 기종 737맥스 2 대를 국내에 처음 도입해 2019년 초부터 운행했다. 직원들 반응은 좋았고 회사의 성장을 기대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라이언에어와 에티오피아항공의 동일 기종 여객기가 잇따라 추락하면서 이스타항공은 737맥스 운항을 중단했다. 그러나 이건 악몽의 시작에 불과했다. 곧이어 일본 불매운동으로 승객이 끊겼고 올해 들어선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다.

C의 마지막 비행은 3월 29일 국내선 왕복 운항이었다. 사흘 뒤 이스타항공은 회사를 셧다운 했다. 더 이상 적자를 내지 않고 제주항공에 회사를 넘기려는 결정이었다. “결과적으로 그게 문제였다고 봐요. 회사는 하루빨리 제주항공으로 인수를 성사시키려고 문을 닫았는데 결국 결렬됐잖아요. 만약 회사문을 닫지 않았으면 매각이 결렬됐어도 직원들은 무급휴가 신청하고 정부 지원금 받고 버틸 수 있었을 텐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 전셋값이 폭등하면서 내년 계약기간 만료 뒤가 걱정이다. 그는 요즘 새로운 일을 배워 볼 겸 지인이 운영하는 스타트업 회사에 가끔씩 출근한다고 했다. “다음 달부터 실업급여를 받아요. 그동안 대기업에 지원도 해 봤지만 안 됐어요. 구인광고를 찾아봐도 요즘은 회사들이 개발자만 뽑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더라고요. 그래도 뭔가 해야죠. 꿈이야 다시 비행기를 타는 거지만 그게 가능할지….”

이준영 전 YTN기자(한·미 조종사 자격증 보유)

◆글싣는 순서
① 고개 숙인 조종사들
② 늦깎이 항공유학생의 애환
③ 도박이 된 도전
④ 항공업계 빅뱅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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