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윤석열 검찰총장을 직무배제하고 징계를 청구하면서, 전국의 일선 검사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감찰과 사퇴 압박에 반발, 평검사회의가 열린 지 7년 만이다. 전날에 이어 전국 일선 검찰청 20여곳에서 평검사들이 회의를 거쳐 집단 성명을 발표했고, 전국 고검장ㆍ지검장들도 거의 대부분 동참했다. 이른바 검란(檢亂)으로 불렸던 과거의 집단행동 또는 항명파동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전례 없는’ 규모로 검사들이 들고 일어선 셈이다.
전국 고검장들은 26일 윤 총장에 대한 추 장관의 감찰 지시와 징계 청구, 직무 배제 조치의 적정성을 문제 삼으며 재고를 요청했다.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직접 성명서를 올린 장영수 대구고검장을 비롯해 조상철 서울고검장, 강남일 대전고검장, 박성진 부산고검장, 구본선 광주고검장, 오인서 수원고검장 등 전국 고검장 6명 전원이 이름을 올렸다.
고검장들은 입장문에서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 강화라는 검찰 개혁의 진정성이 왜곡되거나 폄하되지 않도록 현재 상황과 조치에 대한 냉철하고 객관적인 평가와 판단 재고를 법무부장관께 간곡하게 건의 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수사지휘권 발동에서 직무배제까지) 일련의 조치들이 총장 임기제를 무력화하고 궁극적으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한다는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부 감찰 지시 사항의 경우,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수사와 재판에 관여할 목적으로 진행된다는 논란이 있고, 감찰 지시 사항과 징계 청구 사유가 대부분 불일치한다”며 “절차와 방식, 내용의 적정성에 의문이 있다”고 추 장관을 비판했다.
김후곤 서울북부지검장 등 검사장들도 성명을 발표했다. 전국 18개 지검 중 3곳을 제외한 15명의 지검장들과 고검 차장(검사장급) 2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법적 절차와 내용에 있어서 성급하고 무리하다고 평가되는 징계를 청구하고, 이를 뛰어넘어 곧바로 그 직무까지 정지하도록 한 조치에 대해, 대다수 검사들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법치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친정부 성향으로 분류되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김관정 서울동부지검장, 라임자산운용 의혹 수사를 이끄는 이정수 서울남부지검장은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이밖에 일선 검찰청 20여곳의 평검사들도 각각 회의를 열고 성명서를 냈다. 세부 내용은 조금씩 차이가 있었지만, 평검사들은 하나같이 ‘검찰의 독립성’과 ‘법치주의 훼손’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직급별 성명도 잇따랐다. 구성원들 간 의견이 조금씩 의견이 엇갈린 것으로 전해진 서울중앙지검의 경우, 부부장검사들이 먼저 성명을 냈다. 서울서부지검은 부장검사들이 입장을 밝혔고, 전국 부치지청(부장검사가 있는 지청)의 지청장 13명, 비(非)부치지청 지청장 15명도 성명에 동참했다. 전국 검찰청의 인권감독관 전원, 고검ㆍ지검의 사무국장(일반직)들도 대열에 합류했다. 대검에서는 전날 연구관(평검사)에 이어, 이날엔 중간간부 27명이 성명을 냈다.
이날 윤 총장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직무 집행정지 처분을 취소하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윤 총장은 소장에서 “직무 집행정지는 해임 수준의 중징계가 예상되고, 직무 집행의 계속성이 현저하게 부적절한 때에 하는 것”이라며 자신에겐 그러한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추 장관이 제시한 6가지 징계 사유에 대해서도 “사실관계가 인정되기 어렵고, 직무를 정지할 수준도 아니다”라고 정면 반박했다. 논란이 일었던 재판부 사찰 의혹에 대해선 “재판부의 재판 스타일 등 공소 유지에 참고할 필요가 있는 내용으로, 대부분 자료는 법조인 대관이나 언론 등에 공개된 것”이라며 문건 전체를 언론에 공개했다.
법무부는 그러나 이날 ‘판사 사찰 의혹’과 관련, 윤 총장에 대한 수사(직권남용 혐의)를 대검에 의뢰했다. 법무부는 또, 다음달 2일 윤 총장에 대한 징계위원회를 열겠다면서 윤 총장 또는 대리인에게 출석을 통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