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목받은 재심 사건들을 보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오랜 시간을 보낸 이들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감히 짐작하기도 어렵다. 어쩌면 그보다 더 공감하기 어려운 것이 동물원 동물들의 삶일지 모른다. 동물들은 갇혀 있는 자신의 삶에 무덤덤해 보이며 변호사를 선임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어떤 사람들은 동물이 갇혀 있다는 사실 자체에 무감각하다.
동물원은 오래전부터 동물을 가두고 지켜보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설득해왔다. 현대 동물원들은 더욱 설득에 능하다. 수십~수백억원을 들여 동물사를 리모델링해 마치 진짜 같은 연극 무대를 만든다.
1865년에 문을 연 독일의 하노버 동물원은 1994년까지 전형적인 구식 동물원이었다. 점차 방문객이 줄어 고전하던 이 동물원은 막대한 금액을 들여 2000년부터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그 중 캐나다 유콘 지역을 본 딴 '유콘 베이'는 10년간 3,600만유로를 들여 완성한 블록버스터급 동물사다. 동물쇼를 보여주는 스타디움도 있었다. 순록, 회색늑대, 라쿤, 아메리카들소를 지나니 캐나다의 광산 마을에 들어선 듯했다. 길을 따라 유리창으로 된 통로로 내려가니 물속이었다. 북극곰이 가까이 보였다. 아프리카 펭귄이 머리 위를 헤엄쳐 지나갔다. 북극곰이 쓰는 면적은 과거보다 60% 넓어졌다. 3,100m의 해수가 2시간마다 정화되고 파도를 만드는 시스템도 갖췄다. 2019년에 새끼 북극곰이 태어났다는 소식도 들었다. 이 정도면 동물원 동물들의 삶도 괜찮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같은 동물원에 있는 아시아코끼리들의 삶은 다르다. 2016년 방문했을 당시 코끼리 사육사들이 불훅(Bullhook·코끼리를 찌르며 훈련하는 쇠꼬챙이)을 지닌 모습을 봤다. 실제 쓰는 장면은 보지 못했다. 다녀와서 찾아보니 2017년 동물보호단체 페타(PETA)가 올린 영상이 있었다. 코끼리들끼리 일렬로 서거나 앞발을 들게 하는 동물쇼를 시키다 사육사들이 불훅을 쓰는 장면이었다.
잘 눈에 띄지 않는 뒷 공간에서 훈련받던 새끼 코끼리는 도망가고, 사육사는 그런 새끼를 쫓아가 찌르고 채찍까지 썼다. 오래 전부터 쓰인 방식이지만, 이렇게 학대 받은 코끼리는 오랫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리기에 지금은 지양하는 훈련법이다.
페타는 하노버 동물원을 고발했지만 영상이 너무 짧아 해 끼친 행위가 불명확하다고 결론났단다. 하노버 동물원은 2018년에 불훅을 쓰지 못하게 했고, 5마리를 벨기에 동물원에 보냈다. 그런데 그 곳은 불훅을 쓰는 곳이었다. 동물 복지를 위한 독일의 새로운 사육 기준에 맞추기 위한 조치였는데, 정작 더 안 좋은 곳으로 내몰린 것이다. 이런 경우는 주목받지 못한다. 과거 서울대공원이 국제 인증을 이유로 여러 다른 체험동물원에 넘긴 알락꼬리여우원숭이들과 같은 경우다.
무대 위 동물들은 제법 잘 살아가는 듯하다. 사실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잠시 그렇게 감상한 뒤 집으로 돌아가 잊어버린다. 동물은 무대에서 생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