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전기차 배터리 업계 1위인 LG화학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한국, 미국에 이어 독일에서까지 LG화학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가 화재 위험으로 리콜(시정조치)에 들어가면서 품질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어서다. 업계 안팎에선 국내외에서 발생한 화재원인이 배터리로 밝혀질 경우 LG화학을 포함해 K-배터리 업계에 돌아올 타격은 상당할 전망이다.
26일 독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푸조시트로엥그룹(PSA) 산하 브랜드인 오펠은 최근 2017년부터 2020년 사이 생산된 전기차 '암페라-E' 550여대에 대한 리콜을 실시한다. 전기차 배터리팩에서 연기가 발생하거나, 화재 위험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실제 이달 초 독일 랑엔펠트 지역에서는 주차돼 있던 암페라-E가 불에 타는 사고가 발생했다.
암페라-E는 오펠이 제너럴모터스(GM) 산하에 있을 당시 쉐보레 '볼트EV'와 함께 개발된 전기차다. 플랫폼, 차체, 배터리까지 모두 공유하고 있다. 쉐보레 볼트EV 역시 이달 초부터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 명령으로 2017~19년 생산된 6만9,000여대에 대해 리콜 조치를 진행 중이다. 해당 차량들은 LG화학 오창공장에서 생산된 배터리를 장착했다.
오펠 관계자는 "화재 원인에 대해서는 GM과 함께 계속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이번 리콜에서는 배터리 화재 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해 최대 충전률을 90%로 낮추는 배터리관리시스템(BMS) 업데이트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LG화학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의 화재 위험 리콜은 이미 시작됐다. 지난달 국내외에서 7만7,000여대 대규모 리콜에 들어간 현대자동차 전기차 '코나 일렉트릭(코나EV)'도 LG화학 'NCM622(니켈ㆍ코발트ㆍ망간 비율이 6:2:2)' 배터리셀이 적용됐다. 최근 두 달 동안에만 국내외 시장에서 약 15만대 규모의 LG화학 배터리에 대한 리콜이 발생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코나EV, 볼트EV, 암페라-E 등 최근 리콜을 실시한 차량들의 생산 시기가 비슷하다는 점에서 배터리 결함을 화재 원인으로 꼽고 있다. 당시 LG화학은 분리막 조달처를 SK이노베이션에서 '상해은첩', '시니어' 등 중국업체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중국산 분리막은 SK이노베이션보다 단가가 60~70% 수준이지만, 품질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국토교통부와 자동차안전연구원(KATRI) 측에서도 코나EV 리콜 발표 당시 분리막 손상을 유력한 화재원인으로 지목했다.
LG화학 측은 정확한 화재 원인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이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현재 배터리 화재 가능성에 대한 조사를 위해 GM과 협력하고, 현대차, 국토부, KATRI 등과도 공동 조사에 매진 중이라고 전했다.
LG화학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들이 잇따라 리콜에 들어가면서 다른 고객사들도 불안에 떨고 있다. 현재 LG화학의 주요 고객은 GM, 현대차그룹을 제외하고도 테슬라, 폭스바겐그룹, 르노그룹, 볼보, 재규어랜드로버 등 전동화 분야 선도업체 대부분이다. 수주잔고만 150조원이 넘는다. LG화학 고객사 한 관계자는 "전기차는 미래 시장에서 중요한 차종인데, 만약 화재가 발생하면 타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배터리 업계에서는 LG화학 뿐만 아니라 삼성SDI도 해외에서 리콜을 시행하면서, 자칫 K배터리 '열풍'이 식을 것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삼성SDI의 배터리를 장착한 포드 차량 2만7,000여대와 BMW 차량 2만6,700여대도 최근 유럽에서 리콜에 들어간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는 '제2의 반도체'로 불릴만큼 국내 산업에서 중요한 산업인데, 품질 이슈가 계속 발생하게 되면 세계 1위 자리를 중국이나 일본에 내어줄 수도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