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소에서 경계 근무 중이던 장병이 멀리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황금마차'를 발견하곤 얼굴에 반가운 미소를 머금었다. 황금마차는 전방 등 오지에 위치한 소규모 부대를 찾아가는 국군복지단의 이동마트를 말한다. 정규 매점 운영이 불가능한 부대 장병들에게 제공되는 일종의 복지 혜택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비포장 길을 한참 내달려야 닿는 산등성이 작은 부대에선 황금마차 오는 날이 곧 잔칫날, 장병들은 일주일 내내 목이 빠져라 기다린다.
지난달 경기 고양시에 위치한 국군복지단 고양지원본부 물품창고를 찾았다. 소속 장병들이 과자와 햄버거, 라면, 음료를 비롯해 칫솔 등 일용품, 방한용품이 들어 있는 상자들을 이동마트 차량에 차곡차곡 싣고 있었다. 물품마다 검수과정을 거치고 품목별로 진열하는 데 2시간 가까이 걸렸다.
총 10여종 650여 품목의 물품을 적재함에 가득 싣고 물품창고를 출발한 이동마트, 즉 황금마차는 인근 파주지역 내 11개 격오지 및 초소부대로 향한다. 각 부대를 매주 한 번씩 빠짐 없이 찾는데, 부대의 특별 요청이 있거나 생일을 맞은 장병이 있는 부대, 초소의 날 등 예외적인 경우엔 한 차례 더 들르기도 한다.
부대에서 부대로 이동하는 데 평균 2시간, 하루에 들러야 할 부대가 적지 않다 보니 늘 시간이 촉박하다. 그 때문에 황금마차를 운행하는 관리관들은 초소에 도착해 점심을 해결하는 경우보다 때를 놓쳐 빵이나 컵라면으로 끼니를 떼우는 경우가 더 많다. 보통 하루 2~3개 부대를 방문하고 부대당 1시간 반 정도 머무는데, 부대 인원이 100명을 넘거나 훈련이 있는 경우 장병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기 위해 최대 3시간까지 기다리기도 한다.
황금마차가 찾아가는 군부대가 대부분 산악이나 해안가 등 접근이 쉽지 않은 지역에 위치하다 보니 운행 전 날씨를 챙기는 것도 필수다. 눈이나 호우 예보가 있을 경우엔 해당 날짜보다 미리 부대를 찾아가기도 한다.
장병들의 '희망' 황금마차는 파주 지역을 비롯해 강원 철원·연천 등 북부지역과, 고성·동해 등 동해안지역, 충남 태안·서산·전남 여수 등 서해안지역, 완도·경남 통영·거제 등 남해안 지역까지 40여개 지역에서 총 45대가 운영 중이다.
황금마차도 세월이 지남에 따라 세대교체를 거쳤다. 과거 2.5t 군용 트럭을 개조해 운행하던 시기엔 적재공간이 협소하다 보니 물건을 충분히 싣지 못했고, 판매병이 적재함에서 일일이 물품을 찾아 건네주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판매병은 물론 이용 장병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2014년 민수용 트럭 3종류(2.5, 3.5, 5t)를 도입했다. 그 후 황금마차는 개방형 이동마트 차량으로 변신, 적재공간이 넓어지면서 냉장고와 냉동고, 판매시점 정보 관리(POS)시스템까지 갖추게 됐다. 장병들이 직접 황금마차에 올라가 고를 수 있도록 슬라이드형 계단과 햇볕 차단용 윙도어도 설치되면서 한결 쾌적한 '쇼핑'이 가능해졌다.
그 사이 장병들이 선호하는 품목 또한 달라졌다. 과거 엄두도 못 내던 아이스크림과 차가운 음료수는 여름철 가장 인기가 많고, 시원한 반팔 쿨론티도 잘 팔린다. 최근 피부 관리에 힘쓰는 장병들이 늘면서 화장품과 마스크팩이 잘 나가다 보니 화장품 종류도 늘었다. 다가오는 겨울철 장병들 사이에서 선호도 1위 품목은 햄버거다. 따뜻하게 데워 먹을 수 있는 전자레인지가 갖춰진 덕분인데, 햄버거 외에도 각종 냉동식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지불 수단도 확 바뀌어 95% 이상이 카드 결제다.
한번에 600~700개의 물건을 싣고 출발해도 여러 부대를 거치다 보면 모든 장병에게 만족하게 분배할 수 없다. 황금마차가 매주 부대 방문 순서를 바꾸는 이유다. 지난주 가장 먼저 방문한 부대는 이번주엔 두 번째나 세 번째로 찾아가면서 여러 부대 장병들이 공평하게 물품을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업무 특성상 구매가 어려운 장병들을 위해 관리관이 미리 예약을 받아 판매하기도 한다. 파주 지역에서 이동마트를 운행하는 우상진 관리관은 “한번은 방공 진지에 있던 한 장병이 새로 나온 피자토스트빵을 먹고 싶어한다는 얘기를 듣고 한 번에 10개를 챙겨간 적도 있다”며 "매일 험로를 달리는 강행군이지만 황금마차 오기를 목 빼고 기다리는 병사들을 생각하면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감사합니다'라는 장병들의 우렁찬 목소리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전방 및 해안 부대에서 근무하는 장병들에게 황금마차는 먹거리와 일용품을 제공하는 '매점'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육군 1군단 방공기지에서 근무하는 주호민 상병은 “격오지 진지라는 제한된 환경 속에서 황금마차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라며 “이동마트가 온 날에는 음식을 선·후임들과 함께 먹으며 관계가 돈독해지고 피로도 저절로 풀린다”고 말했다. 같은 부대 우찬빈 일병은 “어렸을 때 용돈을 모아 군것질하던 기억도 나고 관리관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힘도 난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 군부대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확진자가 급증하면서 황금마차도 지난 25일 이후 운행을 일시 중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