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이 5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4년 간 마주했던 외교적 환경과 비교하면 단순히 공화당에서 민주당 정권으로의 '교체' 그 이상을 의미하는 변화가 예상된다. 한국으로선 거대한 변화에 대응해야 하고, 새로운 외교 셈법을 구상해야 하는 시기에 직면한 셈이다.
25일 한국일보와 코리아타임즈는 서울 신라호텔에서 '2020 코라시아포럼'을 열고 '달라진 미국, 달라진 질서, 한국의 선택은'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김준형 국립외교원장과 외교부 차관을 지낸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토론자로 참여했고, 김지윤 정치학 박사가 진행을 맡았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이 한국에 안길 최대 숙제는 '한일관계 개선'이라는 데 토론자들의 이견은 크지 않았다. 김준형 원장은 "동맹주의를 앞세운 바이든 행정부는 한일관계를 방치했던 트럼프 대통령 때와 달리 한일관계에 개입하고 둘 사이를 중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태용 의원도 "한국과 일본이 동맹국은 아니지만, 한미일 3국 간 협력체제도 안보 차원에서 필요한 외교적 선택지로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재성 교수 역시 "중국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위해 바이든 행정부로선 한일관계 개선을 상당히 독려할 것"이라면서 "이에 대비한 (한국 정부의) 선제적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의 북한 비핵화 협상 전망은 다소 엇갈렸다. 김준형 원장은 "내년 하반기라도 양국 정상이 대면하는 또 한번의 역사적 장면이 연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기대 섞인 전망을 한 반면 조태용 의원은 "비핵화 라는 성과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이미 3차례 이뤄진 북미 정상회담에 바이든 당선인은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다소 회의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다음은 질의응답.
김지윤 박사= 차기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와 어떤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고 예상하나.
김준형 원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당선 수락 선언에서 ‘변곡점’이라는 표현을 썼다. 트럼프 행정부 4년 간 잃어버린 미국의 리더십을 다시 찾아오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미국 우선주의' 노선에서 기존 세계 질서로 돌아가기 위해 동맹관계를 복원할 것이다. 대북정책에선 트럼프 시대에서의 정상 간 협상을 실무 위주 협상으로 돌릴 것이다. 이 말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로 복귀한다는 뜻이 아니다. 보다 실용적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북한과의 협상을) 준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조태용 의원= 트럼프 행정부 때 흐트러졌던 대북 제재압박 체제를 복원시키는데 우선 관심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제재와 압박을 통해 실질적이고 진정한 비핵화 협상에 나설 것이란 얘기다. 같은 의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보여줬던 이벤트 식의 사진 찍기엔 관심이 없을 것이다.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받아낼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2018년 싱가포르 정상회담 같은 방식을 시도하진 않을 것이다.
전재성 교수= 트럼프 시대에서 보았던 익숙하지 않았던 미국이 아니라 본래의 미국, 체계적인 외교정책을 지닌 미국으로 돌아올 것이다. 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중국의 팽창 등 미국의 힘이 예전 같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이전과 같은 리더십을 행사할 수 있을지 유심히 지켜볼 일이다.
김지윤 박사= 바이든 당선인이 취임 이후 본격적인 중국 견제에 나선다면 한일관계를 빼놓고 생각하기 어려울 것 같다. 바이든 행정부가 악화일로의 한일관계에 어떻게 개입할 것으로 보는가.
전재성 교수= 중요한 문제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동맹국들 간 주권이 걸린 상황에선 중립적인 입장을 지켜 왔다. 단 전략적 목적 차원에선 동맹국들의 역할을 강조할 것이다. 개입이라기보단 (한일 간) 협력을 촉구하는 형태의 다양한 외교적 노력이 나올 것이다. 따라서 우리 입장에선 한일관계 개선도 최우선 과제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 정부가 선제적 조치를 취하는 게 향후 한미 관계를 위해서 중요하다.
김준형 원장= 한일 간 관계개선을 위한 입장이 다른 게 문제다. 우리 정부는 (대화 테이블에) 나와서 얘기부터 하자는 것인 반면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와 강제동원 문제 등을 먼저 털고 가자는 입장이다. 일종의 굴복을 원하고 있다고 할까. 이런 상황 속에서 동맹 간 네트워킹이 중요한 바이든 행정주 입장에서는 한일관계를 방치했던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중재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조태용 의원= 우리가 일본을 바라볼 때 안보 측면도 늘 생각할 필요가 있다. 물론 한일은 동맹국이 아니다. 하지만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한국의 선택지는 그렇게 많지 않다. 한미일 간 안보협력도 하나의 중요한 카드다. 문을 닫지 말고 한미일 간 적절한 수준의 협력 체제를 유지하는 게 우리 안보 이익에 부합한다.
김지윤 박사= 바이든 당선인 측의 동맹관계 강조는 결국 ‘중국 견제’에 목적을 두고 있는 듯 하다. 이름이 달라질 순 있겠지만, 쿼드(Quad·미국 일본 호주 인도 등 4자간 안보협력체) 같은 중국 압박을 위한 다자체제에 참여해달라는 압박 역시 계속될 듯 하다. 우리 정부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한다고 보는가.
김준형 원장= 쿼드에 이미 참여하고 있는 인도나 참여 압박을 받고 있는 베트남 등도 ‘중국 견제’라는 목적에는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 다만 바이든 행정부의 중국에 대한 목표는 국제질서를 지키는 국가로 변모시키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 처럼 이쪽이냐 저쪽이내 편 가르기 식으로 가진 않을 것이란 뜻이다. 때문에 한국에 대해서도 양자택일로 몰아붙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조태용 의원= 미국이 원하는 협력체 참여를 거부하는 등 동맹국 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는 일단 협력체 참여를 통해 그 언에서 협력체를 바꿔볼 생각도 해야한다. 중국이 앞장섰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참여한 뒤 한미관계가 절단났다고 할 수 있나. 그렇지 않다.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참가하고, 그 속에서 우리 국익에 맞는 환경을 조성해볼 여지도 있다.
김지윤 박사=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최근 쿼드 참여 여부와 관련 그럴 의향이 없다는 식으로 발언했다.
전재성 교수= 어려운 문제다. 단 바이든 행정부의 중국에 대한 전략 스펙트럼은 굉장히 넓을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전략을 쓸 수 있고 쿼드 같은 중국을 겨냥한 안보 협력체도 다양하게 운영할 가능성 크다. 한국의 국익도 고려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의 국익에 맞게 미국의 중국 정책을 우리가 선제적으로 끌어가볼 수 있는 공간이 바이든 행정부 초기에 열릴 가능성 있다. 그 공간을 잡지 못하면 이미 갖춰진 미국의 규범에 참여하냐 마느냐의 압박 선택지에 놓일 공산이 크다.
김지윤 박사= 북핵문제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바이든 시대에서도 북미 정상회담이 가능하겠나. 가능하다면 언제쯤으로 예상하나.
김준형 원장= 섣부른 감이 없진 않지만, 이르면 내년 하반기라도 가능하다고 본다. 북미 간 싱가포르 합의가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담겨있는 비핵화 정신과 원칙은 버릴 게 없다. 싱가포르 합의가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바이든 당선인은 아직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안 만나겠다고 하지 않았다. 비핵화 조치를 하면 만날 수 있다고 했기 때문에 당장은 힘들겠지만, 서로 자극하지 않으면서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해 보인다.
조태용 의원= 바이든 당선인 입장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미 트럼프가 김정은을 세 차례 만났다. 당장 만나봐야 내세울 성과가 없는 상태라는 판단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실질적인 비핵화 성과를 따질 것이고, 2019년 하노이에서 미국과 북한이 주고받았던 협상안이 기준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 내 공화당 비판을 피하자면, 하노이 협상안보다 진전된 비핵화 조치를 얻으려 할 것이다. 즉 북미 정상회담 여부는 시기가 아니라 실질적 비핵화 조치 여부에 달렸다.
김준형 원장= (비핵화 조치가 중요하다는 조 의원 말씀에) 동의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노이 협상안의 리패키지(Re-Package·보완)가 중요하다. 하노이 협상안을 그대로 가져오긴 부담스럽고 핵개발 동결이나 북미 간 수교 협상 시작 등을 적절히 섞는 '리패키지' 라면 북미가 대화에 나설 수 있다고 본다.
조태용 의원= 일리 있는 말씀인데, 하나가 빠졌다. 완전한 비핵화 프로세스에 대한 북한의 약속이다. 핵개발 동결은 완전한 비핵화 목표의 과정이다. 거기에 그쳐선 안된다. 즉 동결로 끝나는 게 아니라, 북한의 최종적인 핵폐기 약속이 반드시 담보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