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한진칼 경영권을 두고 대립 중인 KCGI(강성부펀드) 측에서 제기한 한진칼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대한 가처분 신청에 대한 첫 번째 심문에서 열띤 공방이 펼쳐졌다. 재판부는 이날 가처분 신청 인용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산업은행의 한진칼 유상증자 납입기일이 12월 2일이므로, 이번주 중으로 기각 여부가 갈릴 전망이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이승련 수석부장판사)는 오후 5시 KCGI가 지난 18일 제기한 ‘한진칼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 결의에 대해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의 첫 심문기일을 열었다.
이날 법정에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반도건설 등과 함께 ‘3자 주주연합’을 구성한 KCGI 측 대리인은 “신주발행은 산업은행의 의도와 무관하고, 조원태 회장의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봐야 한다”며 “경영권 분쟁의 한복판에 있는 회사 경영진이 이 같은 중대한 결정을 주주를 완전히 배제하고 임의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지가 이 사건의 법적 본질”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당한 정책이라도 반드시 법이 정한 절차를 따라야 하고, 누구의 권리도 국가정책이라는 이유로 침해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KCGI 측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더라도 항공업 재편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신주 발행 중단이 곧 (대한항공·아시아나) 통합 좌절이라는 주장은 증명될 수 없는 허구이고, 위법을 시정해서 처음부터 다시 준비하면 된다”며 “재벌 회장 일가의 지위 보전 목적에 휘둘리지 않고 상법이 정한 대로 합리적으로 풀어나갈 기회를 꼭 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진그룹 측도 팽팽하게 맞섰다. 한진그룹 대리인은 “이번 딜은 산은의 제안으로 고민 끝에 회사 자체 존립을 위해 필요하다고 경영산 판단을 한 것이고, 산은은 (우리의) 백기사가 아니라 경영진의 경영성과 약속 이행을 감사하는 경영 감독자”라며 “경영권 분쟁으로 신주 발행을 할 수 없다면 오히려 일부 주주의 이익만 과도하게 보장한 게 아닌지 살펴봐 달라”고 설명했다. 이어 ‘인수대금 졸속 결정’ 문제에 관해 설명해달라는 재판부 요청에는 “2개월 이상 준비를 거친 협상 끝에 (항공업 재편을 위해)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판단이 들었지, 결코 졸속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날 재판부는 한진그룹 측에 대안적 거래 방식이 논의된 인수 발표 전 검토자료 등을 제출해달라고 요구했다. 다만 재판부는 이러한 요구가 특정 메시지를 포함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재판부는 “이 사건 결정이 늦어도 내달 1일까지 나와야 하는 만큼 상대방의 주장에 대한 반박 서면을 금요일(27일)까지 내달라”고 한 후 첫 심문을 종결했다.
이번 법정대립은 재판부가 경영상 ‘시급성’의 범위를 어느 정도까지 인정해 줄 것인지, 현 상황을 경영권 분쟁으로 판단할지가 관건으로 꼽힌다. 통상 경영권 분쟁이 벌어지고 있으면 회사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 등의 신주 발행은 위법이라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한다. 법원이 시급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없다고 보고 단지 조 회장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단행한 것으로 판단하면 가처분 신청이 인용된다.
재판부는 한진칼과 3자 연합의 갈등이 법적으로 경영권 분쟁 상황에 속하는지도 따져볼 것으로 관측된다. KCGI가 한진칼과 벌인 지분 경쟁이 법적으로도 경영권 분쟁이 맞느냐는 것이다. 산은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관련해 제3자 배정 유상증자로 한진칼의 지분 약 10.7%를 확보하게 된다. KCGI는 산업은행이 한진칼 지분 10.7% 보유를 통해 캐스팅 보트를 쥐고,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우군’ 역할을 할 수 있다며 비판했다. 반면 산은과 한진그룹은 현 경영진의 윤리경영과 건전경영을 감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가처분신청은 신속한 집행을 위해 재판부가 통상 1~2번 심문을 거친 뒤 결론을 낸다. 한진칼 유증 납입 기일인 내달 2일 이전에 판결이 날 전망이다. 법원이 만약 가처분신청을 인용하면 한진칼을 통한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사실상 무산된다. HDC현대산업개발에 이어 2차례 매각 시도가 불발되는 아시아나항공은 기존 계획대로 채권단 관리 하에서 재매각을 노려야 한다.
업계에서는 가처분신청 인용으로 아시아나항공의 경영 위기가 극심해질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3조6,000억원의 정책자금이 투입됐음에도 높은 부채율(2,291%)과 자본잠식상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때문에 이번 ‘빅딜’이 무산될 경우, 산은 체제하에서 고강도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은 연말까지 6,000억원이 필요한데,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면 사실상 자금 조달이 불가능해진다”며 “이에 따라 신용등급 하락 및 각종 채무의 연쇄적 기한이익 상실, 자본잠식으로 인한 관리종목 지정, 면허 취소로 이어질 경우 대규모 실업사태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