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조3,000억원.’
2006년부터 올해까지 15년간 정부가 저출산을 타개하기 위해 투입한 예산 규모다. 올해 예산만도 40조2,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제1차 저출산 기본계획(2006~2010년) 원년인 2006년 예산(2조1,000억원)의 20배로, 해마다 관련 예산은 늘었다.
대규모 재정을 투입한 결과는 참담하다. 2005년 저출산 대책 마련 당시 합계출산율(15~49세 가임기 여성 1명이 평생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1.07명이었다. 이 합계출산율은 이후 세 차례에 걸친 저출산 기본계획 시행되는 동안 매년 하락하더니 올해 상반기엔 0.84명으로까지 떨어졌다. 올 연말까지 포함하면 0.83명까지 떨어진다는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이쯤 되면 225조원이나 퍼부은 세금은 아무런 효과 없이 허투루 썼다는 결론에 이른다.
25일 정부에 따르면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내년부터 제4차 기본계획을 다시 시작한다. 정부는 다음달 구체적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제까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실패로 끝난 예전 계획과는 달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속절없이 추락하는 출산율만 보면 저출산 정책은 ‘돈 써봤자 소용 없는’ 정책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씀씀이를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저출산 대책이라 할 수 없는 돈들이 대거 포함돼 있어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템플스테이’, 교육부의 ‘소프트웨어 중심대학 지원사업’이나 ‘대학 인문역량 강화 사업’ 등 누가봐도 명백한 교육ㆍ사회정책 예산이 저출산 예산에 포함된 경우가 허다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 관계자는 “각 부처에 저출산 예산을 편성하라고 주문하고 거기에 맞추려 정책을 끼워맞추기 하다보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 귀띔했다.
이렇다 보니 출산과 돌봄 등에 직접 지원되는 예산은 저출산 사업 전체 예산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저출산 예산 40조1,906억원 가운데 난임지원, 보육지원 등 직접지원 예산은 19조221억원으로 47.3%에 그친다. 나머지는 고용, 주거, 교육 등 간접지원이다. 여기엔 주거 대출처럼 실질적인 출산 지원으로 보기 어렵거나, 국공립 유치원 신ㆍ증설 등 자본투자성 사업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저출산 예산은 규모만 커 보이는 착시 현상을 만들어낸 셈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주거, 고용 등 결혼ㆍ출산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더라도 다른 기능이 있을 경우 지원에 포함하지 않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경우와 대비된다”고 말했다.
치솟는 집값, 사교육비 부담, 일ㆍ가정 양립 어려움, 빈부 격차 심화 등 결혼과 출산을 꺼리게하는 요인들이 산재한 상황에서 저출산 문제는 단기적으로 풀 수 없는 난제다. 엉뚱한 곳에 저출산 정책이라 이름붙여 돈을 낭비하느니 차라리 사회 대개조에 버금가는 인식 전환을 유도하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이는 기존 1~3차 저출산 기본계획 중에서도 성공적이라고 평가받는 분야와 과제를 봐도 잘 드러난다. 실제 지난 15년 동안 교육비 지원 확대, 육아휴직 급여 인상 및 남성 육아휴직 증가, 난임 시술 건강보험 적용 같은 것들은 호평을 받았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기존 저출산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분류된 정책과 이에 대한 지원이 실제 출산과 관련된 것이 많지 않았다"며 "새로운 계획에는 출산에 직접 연관된 분야를 선택하고 집중 지원하는 내용이 담길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