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이 사찰 대상이던 시사만화가 박재동 화백에 대해 단순 여행 프로그램 출연까지 감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22일 박 화백이 한국일보에 공개한 국정원의 동향 정보 등 사찰 문건에 따르면, 국정원은 지난 2009년 3월 18일 ‘박재동 화가의 EBS 출연관련 동향 보고’ 문건을 작성했다.
박 화백을 ‘좌파성향'이라 규정짓고 시작하는 이 문건은 “EBS는 ‘세계 테마기행’을 외주제작사에 의뢰하며 만든 작품으로 고정 출연자가 없어 외주업체가 임의로 선정”하며 “‘테마기행’ 출연자는 통상 사회적으로 물의를 야기시킨 인물이 아닐 경우 출연시키는 것이 원칙”이라 설명해뒀다.
이어 “이번 박재동 화백 출연 경우는 책임 PD가 박재동 화백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야기시킨 적이 없어 출연을 승인한 것”이며 “이에 따라 경영진에 별도 보고를 하지 않아, 경영진도 박재동 화백 출연사실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고 적었다.
‘세계테마기행’ 출연진 섭외는 외주제작사 재량에 달려 있으니 EBS 경영진이 박 화백 같은 좌파인사의 출연 여부를 일일이 파악하지 못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EBS 자체제작 프로그램의 경우 경영진 선에서 좌파성향 인물의 방송 출연을 검열했으리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2008년 2월 방영을 시작한 EBS 세계테마기행은 소설가 김영하, 영화평론가 이동진, 가수 이상은 등 다양한 분야 문화예술인들을 내세워 특정 주제에 맞춘 여행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박 화백은 2009월 3월 9일부터 12일까지 방영된 그리스 편에 출연했고, 국정원 보고서는 그 직후인 3월 18일에 작성됐다.
국정원 문건은 이외에도 “좌편향 만화인들의 모임으로 깃발 시위를 옹호하는 내용의 인터넷 웹툰 만화를 게재하고, 최근 정부 정책을 만화로 풍자한 ‘엠비악법 바로보기’ 만화 릴레이를 제작, 국민에게 유포하는 등 정부 폄훼 활동 치중”, “노문모, 곽노현취임준비위원장, 국정원선거개입진상규명 및 전면개혁 촉구 선언 시국선언 참여” 등 박 화백에 대한 동향보고도 포함하고 있다.
이 문건은 박 화백이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과 함께 국정원을 상대로 제기한 사찰성 정보공개 청구 소송에서 지난 12일 승소함에 따라 국정원으로부터 통보받은 내용이다.
한편 국정원은 "향후 적법한 정보공개청구에 대해서도 관련 법률과 이번 판례에서 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심사해 처리할 것"이라며 "과거 국내 부서의 정보자료 역시 법률에 따라 철저하게 관리하고 관련 정보공개청구 및 소송이 종결되면 폐기 절차를 이행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