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과 공모해 '무자격 차명약국'을 개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진그룹 계열사 정석기업 대표가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정석기업은 한진그룹의 부동산 등을 관리하는 비상장 핵심 계열사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2부(부장 오상용)는 20일 특경가법상 사기·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원모 정석기업 대표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조 전 회장과 공모해 인하대병원 인근에 차명으로 '사무장 약국'을 운영한 혐의로 기소된 약사 이모씨와 남편 류모씨 등 2명에게 각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징역 3년이 선고됐다.
약사 자격증이 없는 원씨와 조 전 회장 등은 인하대병원 인근에 차명약국을 개설한 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요양급여 등을 청구해 1,522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는다. 조 전 회장은 지난해 4월 별세하면서 공소기각 결정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망인(조 전 회장)은 한진그룹 회장이자 인하대병원 재단 이사장이라는 위치를 이용해 피고인을 통해 약국을 실질적으로 지배·운영하면서 이에 따른 수익금을 매년 받았고, 피고인들의 무자격 약국 개설로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편취한 액수만 1,522억원에 이른다"며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했다. 또 재판부는 "원씨가 조 회장 자녀인 현아·원태·현민씨가 보유하던 정석기업 주식을 비싸게 사들이는 등 재산상 이득을 취하게 하고 같은 액수만큼 정석기업에 손해를 끼쳤다"며 배임 혐의도 유죄로 봤다.
재판부는 "자산이 많은 사람이 법적 규제를 피하려고 차명으로 사업을 영위하고 이를 통해 부당 이득을 취하는 것은 오랜 적폐 중 하나"라며 "약국 무자격 개설 사건의 경우 엄청난 자금력을 가진 기업가인 망인이 피고인 원씨를 통해 약국을 개설하고 오랫동안 영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원씨를 비롯한 피고인들이 2년 가까이 재판에 성실히 임했으며 도망할 염려가 없다고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해 법정 구속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