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톡스 원료를 둘러싼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분쟁에 마침표를 찍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최종판결이 또다시 연기됐다. 당초 이달 6일 예고됐던 판결이 한 차례 미뤄진 데 이어 두 번째 연기다.
20일 제약 및 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미국 ITC는 19일(현지시간)로 예정했던 판결일을 12월 16일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연기 소식은 한국 시간으로 20일 오전 7시쯤 ITC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됐다. 연기에 대한 배경이나 이유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ITC는 애초 최종판결 날짜를 6일에서 19일로 늦춘 바 있다.
이로써 5년을 끌어온 메디톡스와 대웅제약 간 분쟁은 다음 달이 돼야 결론이 날 전망이다. 메디톡스는 2016년부터 대웅제약의 보톡스 제품 '나보타'가 자사의 보톨리눔균과 이를 이용한 의약품 제조 기술을 훔쳤다고 주장해 오다 지난해 1월 ITC 제소까지 이르렀다. 미국 기업 엘러간의 제품명 보톡스로 흔히 알려진 주름개선 의약품 보톨리눔 톡신 제제는 보톨리눔균이 만들어내는 물질(톡신)의 독성을 약화시켜 제조한다.
지난 7월 먼저 나온 예비판결에서는 메디톡스가 승기를 잡았다. ITC는 대웅제약의 나보타가 불공정 경쟁 결과물이라며 10년간 수입 배제를 권고하는 예비판결을 내렸다. 보톨리눔균과 관련 기술을 자체적으로 확보했다고 주장해 온 대웅제약은 예비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의를 제기했고 ITC가 이를 받아들여 9월 말 재검토에 착수했다.
최종판결 재연기에 대해서도 두 회사는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대웅제약은 예비판결이 뒤집힐 신호로, 메디톡스는 단순 일정 변경으로 일축한다. 최종판결은 예비판결을 그대로 인용하거나 파기 또는 일부 조정 중 하나가 된다. 대웅제약 측은 "예비판결의 오류를 심도있게 검토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메디톡스 측은 "과학적 증거로 예비판결이 내려진 만큼 12월 최종판결에서도 그 결정이 그대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밝혔다.
두 회사 모두 ITC 판결에 매달리는 이유는 어떤 결정이 나오든 한쪽에는 치명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메디톡스는 2006년 첫 국산 보톡스 제품 '메디톡신'을 출시했지만 제조 과정에서 약사법을 위반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지난 6월 국내 허가가 취소됐다. 최근에는 해외 수출용 제품도 허가가 취소됐다. 메디톡스는 행정소송을 내 판매 중단을 일단 막은 상태다. ITC 승소를 반전 카드로 활용하려 했기 때문에 이번 최종판결 승리가 절실하다.
대웅제약이 패소한다면 미국에서 더 이상 나보타를 판매할 수 없게 된다. 미국 진출을 위해 쏟았던 투자금은 물론 가장 규모가 큰 미국 시장을 놓치게 되고 균주를 도용한 불명예 제약사라는 오명을 얻게 된다. 대웅제약은 국산 보톡스 첫 미국 발매로 주목을 받았던 기업이다.
한편 ITC는 행정 집행과 사법적 판단 기능을 모두 가진 독립 기관이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제품에 관해 기업들이 불공정 경쟁을 이유로 제소하면 자체 조사로 판결과 수입배제, 관세 부과 등 행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 빠른 절차로 진행되는 편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최근 판결 연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앞서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 최종판결도 두 차례 연기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