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도연, 장성규, 장항준이 풀어놓는 '그날' 이야기에 시청자들 홀렸다

입력
2020.11.2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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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인기


"자, 들어봐. 오늘의 이야기는 정말 끔찍하지만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살인 사건에 관한 이야기야."

1977년 4월 20일, 그날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당시 언론이 '인면수심의 살인마'로 묘사한, 이른바 '무등산 타잔' 박흥숙 사건이다. 이야기는 단순 살인으로만 알았던 사건의 이면을 들추더니, 1970년대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과 판자촌 이야기에서 철거, 재개발, 강남 불패 신화의 탄생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끝날 줄 모르던 이야기는 묵직한 질문을 남기면서 마침표를 찍는다. 그날의 사건은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묻고 있는가.

SBS 시사교양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가 보는 이들의 혼을 쏙 빼놓고 있다. 박흥숙 사건을 다룬 회차 시청률은 웬만한 드라마를 웃도는 3.5%를 찍었다. 유튜브에 띄운 요약편 조회수는 평균 260만을 기록하는 등 특히 2040 젊은 시청자층 반응이 뜨겁다.

꼬꼬무의 인기비결은 과몰입을 부르는 이야기의 힘이다. SBS를 대표하는 탐사보도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그알)'를 이으면서도 한 단계 진화한 스토리텔링 방식을 선보인다. 누군가는 꼬꼬무를 두고 '그알 순한 맛'이라고도 한다. 꼬꼬무를 연출하는 유혜승 PD는 "술자리에 가면 얘기를 재미있게 하는 친구가 꼭 한 명 있고, 그 친구 얘기에 나도 모르게 빨려들어가는 경험은 누구나 갖고 있다"며 "거기서 새로운 스토리텔링 방식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꼬꼬무에는 말맛을 제대로 살릴 줄 아는 3명의 '이야기꾼'이 있다. 시청자 눈높이에 더없이 맞춤한 코미디언 장도연과 딕션이 좋아 무슨 얘기든 귀에 쏙쏙 박히게 말하는 방송인 장성규, 풍부한 배경지식으로 이야기에 깊이를 더하는 영화감독 장항준이다.

이들은 실제 자신의 친구를 앞에다 앉혀두고 이야기 보따리를 푼다. 장항준의 30년 지기 배우 장현성, 장성규와 아나운서 지망생 시기를 함께 한 방송인 김기혁 같은 이들이 단골 출연자다. 대화는 당연히 반말이다. 장소도 스튜디오가 아닌 실제 와인바, 펍, 카페 같은 곳을 섭외한다. 친구와 가벼운 술자리, 콘셉트다. 이야기꾼과 이야기친구 세 커플을 교대로 보여주면서 듣는 재미에다 보는 재미를 더했다. 빠른 호흡의 이야기 전개가 주는 박진감에 한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는 반응이 줄 잇는다.



"근엄하게 '이 사건은 이런거야, 이런 의미가 있어'라고 설명하는 건 더 이상 안 먹히더라구요. 어떻게 하면 좀더 흥미롭고 편하게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를 제일 많이 고민했어요." 유 PD는 시사교양의 트레이드 마크랄 수 있는 '엄근진(엄숙·근엄·진지)'을 과감히 버렸다 했다. "취재는 깊이 있게 하되, 이야기는 무조건 재미있게 한다"가 꼬꼬무의 제작 방침이다.

그렇다보니 품이 많이 든다. 1개의 아이템을 소화해내려면 최소 두 달이 걸린다. 제작진 4명이 판결문 열람부터 관계자 취재 등 사전 조사를 충분히 한 뒤 대본을 만드는데 이 과정만 일단 한 달 걸린다. 이야기꾼 3명의 스토리라인을 만들어 넣기 위해 더 많은 정보와 취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보 자체가 풍성하다보니 이야기는 사방으로 가지치기된다. 촬영, 편집 등 후반 작업에 또 한 달을 쏟는다. 때론 너무 많이 번져나가는 바람에 취재하고도 못 내보내는 분량도 상당하다 한다. 유 PD를 비롯한 3명의 꼬꼬무 PD와 작가진 모두 '그알' 출신이다. 취재에는 인이 박힌 이들이다.

아이템 선정에도 공을 들인다. 해방 이후 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날짜별로 리스트업 해뒀다. 이 가운데 요즘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이야기인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기준으로 아이템을 고른다. 애초 꼬꼬무의 시작은 스토리텔러를 통해 현대사를 조명하는 '현대사 프로젝트'였다. 정통 시사교양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지키면서도 동시에 요즘 콘텐츠 시장의 트렌드를 따라잡으려는 노력이 꼬꼬무를 낳았다. 앞서 'SBS 스페셜'의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먼저 전파를 탄 후 화제를 모으면서 지난 9월 정규 편성됐다.

민감한 주제를 다루다 보니 논란도 따라다닌다. 한 유튜브 콘텐츠를 표절했다, 범죄자를 미화한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유 PD는 "이야기를 재밌게 풀다보니 '취재가 제대로 안된 것 아니냐, 깊이가 없는 것 아니냐'고 오해하실 수 있겠지만, 표절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라며 "취재만큼은 누구보다 깊이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있는 사건의 경우 각별히 주의하겠다고도 했다.

유 PD는 "꼬꼬무가 가장 의미있는 포인트는 그냥 재밌자고 시작한 이야기 같은데 마지막에는 우리 삶에 의미있는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라 말했다. 10회 방송으로 시즌1을 마무리하는 꼬꼬무는 시즌2 편성을 노리고 있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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