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익명 신고가 홍콩인들 의심 부추겨… 민주화 더 멀어졌다"

입력
2020.11.20 04:30
14면
<자진사퇴 민주파 람척팅 의원 인터뷰>
"보안법으로 사회 전체에 '위축효과' 팽배
표현의 자유 실종, 정부 반대 주장 사라져
中, 선거제도 바꿔 홍콩 여론 조종할 수도
한국 지지 큰 힘... '바이든 정부' 지켜봐야"

홍콩 의회정치의 기반이 무너져 가고 있다. 중국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은 홍콩 정부가 입법회(우리의 국회) 야당 의원 4명의 자격을 박탈하자 민주파 의원 15명 전원이 동반 사퇴했다. 7월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으로 움츠렸던 홍콩 사회가 다시 격랑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번에 사퇴 결정을 내린 람척팅(林卓廷·43) 의원은 19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보안법 시행과 익명 신고로 인해 홍콩인들은 서로 의심하고 표현의 자유가 사라졌다"면서 "중국 본토에서 투표할 수 있도록 선거제도까지 바꾸면 홍콩의 여론은 조종당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옳고 그름을 뒤바꾼 정부에 맞서 민주화에 대한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한국인들의 지지는 큰 힘이 된다"고 강조했다.

람 의원과의 인터뷰는 지난해 8월에 이어 두 번째다. 당시 5대 요구사항(송환법 공식 철회, 경찰 강경진압 독립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자 석방과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관철)을 외치며 100만명이 넘는 인파가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시위대가 홍콩 국제공항을 점거하는 등 상황이 격화됐다. 이에 중국의 군 병력 투입 가능성이 거론되며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 때였다.

-왜 의원직을 던졌나.

"홍콩 정부가 민주파 의원 4 명의 자격을 빼앗았다. 이에 대한 불만과 항의 표시다. 중국 전인대가 홍콩 기본법을 수정했다. 홍콩 행정장관(정부 수반)에게 선거로 선출된 의원의 자격을 박탈할 권한을 줬다. 터무니없는 일이다."

-의원직 포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의원들 간에 약간의 토론은 있었다. 하지만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자리를 굳이 고집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10분 정도 의견을 나눈 뒤 신속하게 결정했다. 다들 사퇴에 동의했다. 반대한 의원이 한 명도 없어서 결정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입법회에 야당 의원이 없으면 정부를 어떻게 견제하나.

"민주진영 인사들과 사회운동가들의 뜻을 모아 어떤 방식으로 정부에 맞설지 논의하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밝힐 시점은 아니다. 최대한 서둘러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도록 강구하는 중이다."

(4년 임기인 홍콩 입법회 의원은 총 70명이다. 선거가 치러진 2016년 4명이 의원 자격을 잃었고, 다른 1명은 정부 각료로 기용됐다.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올해 9월 선거를 1년 미루자 3명이 임기 연장을 거부하고 의원직을 내려놓았다. 남은 62명 가운데 4명은 최근 의원직을 박탈당했고, 이어 민주파 15명 전원이 11일 동반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로써 현재 의원은 43명인데, 중도 성향의 2명을 제외하고는 전원 친중파로 분류된다.)

-보안법 시행 이후 무엇이 달라졌나.

"사회 전체에 '위축효과'가 팽배하다. 홍콩 시민들은 정부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자유롭게 표출해 왔다. 하지만 보안법 시행 이후 '익명 신고' 때문에 서로를 의심하고 있다. 경찰이 체포해도 정부에 반대하는 주장을 찾아볼 수 없다. 언론의 자유가 사라졌다."

(홍콩 정부는 지난 5일부터 익명으로 보안법 위반 신고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데, 하루 평균 1,400여건의 제보가 쏟아지고 있다.)

-중국은 앞으로 어떻게 나올까.

"홍콩의 선거제도를 바꾸려고 한다. 중국에 거주하는 홍콩인은 내년 선거 때 홍콩에 오지 않아도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한다. 홍콩의 모든 선출직 의원이 중국에 조종당할 것이다. 시민들의 의견이나 여론은 다 무용지물이 된다."

-홍콩 민주진영의 목표는.

"지난해와 다름없이 5대 요구사항 관철이다. 장기적으로는 진정한 민주화다. 하지만 현재 홍콩 상황을 보면 민주화는 엄청나게 먼 미래의 일인 것 같다. 지금 중요한 건 시민들이 신념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정부는 옳고 그름을 뒤바꾸면서 직권을 남용해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탄압하고 있다."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홍콩에 유리한가.

"아직 판단하긴 이르다.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과 대립 구도로 나아갈지 우호적인 관계를 정립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홍콩 문제에 관심이 많다.

"홍콩 상황에 계속 관심을 가져 주셔서 무척 감사하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여러분의 지지는 우리에게 정말 큰 힘이 된다."

베이징= 김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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