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찾은 경기 양주 장흥유원지. 눈길을 확 잡아 끄는 기와집 한 채가 보였다. 지붕 쪽에는 ‘피자성 효인성’이란 글자가 적힌 피자집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의 전통가옥 기와집이 피자가게라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하지만 효인방의 문을 여는 순간 그 고정관념은 완전히 깨졌다.
실내는 안방과 거실을 개조해 만든 모던풍의 분위기와 아기자기한 소품, 은은한 조명이 더해지면서 기와집의 고즈넉함과 함께 고급 피자집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1987년 5월 문을 연 피자성 효인방의 한결같은 모습이다.
정복모(70) 피자성 효인방 대표는 33년 동안 유서깊은 이곳 피자집을 지켜왔다. 40년 전쯤 매입해 살던 농가주택을 개조해 피자집으로 오픈한 것도 정 대표의 아이디어였다.
그는 “청년시절 맛본 미군 부대 피자 맛에 빠져 삼십대 중반 나이에 경기북부지역 최초로 피자전문점을 개업했다”라며 “당시 피자가 대중화가 되기 전이라 개업을 준비하는데 주변 사람들이 ‘빈대떡 집이나 하라’며 비아냥 대기 일쑤여서 난처한 적이 많았다”라고 웃어 보였다.
경기북부 지역에서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시도였음에도, 그의 피자집은 개업 첫해부터 승승장구했다. 참숯 향을 입힌 불고기를 토핑으로 올린 불고기 피자를 주력으로 총 6종류의 피자를 선보였는데, 짜지 않고 담백한 맛이 통했는지 그의 가게는 고객들로 북적였다. 피자는 주문하지 않고 피자 가게가 신기해 구경만 하고 돌아가는 관람객도 많았다고 한다. 효인방이 문을 연 1987년만 해도 해외 유명 피자전문기업이 막 국내에 1호점을 출점할 때라, 당시 피자는 생소한 음식이었다.
당연히 피자전문점을 여는 일은 순탄치 않았다. 외국계 프랜차이즈를 빼고는 피자 레시피를 전수받을 만한 전문점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가 생각한 한국인 입맛에 딱 들어맞는 피자를 만들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칼을 뽑아 들었으니 멈출 수 없었다. 미군부대 레스토랑에 가서 피자를 사들고 와 식재료를 탐색하고, 소스 비법을 알기 위해 군부대 쓰레기통을 뒤져 원료 통을 찾아다니는 등 돌파구를 찾았다. 통역관을 데리고 피자의 본고장 이탈리아로 가 피자 장인을 만나 비법을 전수받기도 했다. 피자 반죽부터 토핑, 소스 만드는 일까지 실력으로 무장한 그는 석쇠에 구운 불고기를 얹은 불고기 피자를 내놓는데 성공하기에 이르렀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불고기 피자를 맛보려는 고객들로 가게는 연일 장사진을 이뤘다. 정 대표는 “테이블이 20개인데, 거의 매일 피자가 200판 이상씩 팔려 나갔다”며 “가게 앞엔 고객들이 10m 넘게 줄을 서 기다리곤 했다”라고 전성기 시절을 떠올렸다.
33년이 흐른 지금은 메뉴가 10여 가지로 다양해졌고, 맛의 깊이도 더해졌다. 대부분이 정 대표가 손수 개발한 것들이다. 그중에서도 효인방에서만 맛볼 수 있는 ‘쑥 고구마 피자’가 간판 메뉴다. 반죽에 제주 청정지역에서 공수해온 생쑥을 갈아 넣어 향긋한 쑥 향이 일품이다. 피자 테두리엔 달콤한 고구마 무스를 채어 넣어 쑥의 쓴 맛을 잡으면서 달콤함을 느끼게 했다. 여기에 제철 과일과 양파, 마늘 등 각종 야채, 잣, 호두 등을 토핑으로 얹어 맛의 풍미를 더했다.
제철 과일을 듬뿍 곁들인 과일피자, 재래식 양념으로 예전 불고기 맛을 느낄수 있는 불고기 피자 등도 있다. 한국인 입맛에 맞는 레시피로 만들다보니, 떡 맛이 나는 피자도 있다. 스파게티에 쫄깃한 떡볶이를 결합해 만든 미니폴도 인기다. 스파게티 고유의 식감을 살리면서 쫄깃한 쌀떡을 곁들여 매콤함과 감칠맛이 더해지면서 입맛을 당긴다. 그의 차별화된 메뉴들은 해외 유명 브랜드와 국내 중저가 프랜차이즈가 장악한 피자 외식시장에서 30년 넘게 건재할 원동력이 됐다.
그의 피자를 맛본 손님들은 단골이 되는 일이 많다. 이날 효인방을 찾은 최모(65)씨는 “이집 피자 맛이 내 입에 꼭 맞아 가족들과 자주 들리곤 한다”며 “20년 넘게 다니다 보니 변함없는 효인방이 친근하다”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쉐프복장으로 무장한 채 자신만의 피자 만드는 비법을 공개했다. “기름은 최대한 적게 쓰면서 싱싱한 제철 식재료를 듬뿍 넣으면 풍미는 더해지고, 피자의 느끼함은 잡을 수 있다. 자신 취향에 맞는 특제 소스를 만들어 입히는 것도 좋은 조리법이다.”
그는 이날 30년 숙련된 피자 제조 기술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하얀 반죽을 여러번 때리며 동그랗게 피자 도우를 만들더니, 그 위에 특제 소스를 바르고 각종 토핑을 올렸다. 이후 여러개의 구멍이 뚫린 컨베이어식 팬에 피자도우를 굽더니,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쑥피자가 완성됐다. 손길 하나하나에 전문 쉐프의 깊이가 느껴졌다.
33년 간 피자집 효인방을 지키면서 유혹도 많았다고 한다. 그의 피자가 유명세를 떨치자 국내 외식업계는 프랜차이즈 사업을 해보자며 연일 러브콜을 보냈다. 지금의 가게 건물을 허물고 그 자리에 번듯한 새 건물을 지어 베이커리 카페를 해보자는 제안도 들어왔다. 잘하면 사업을 키워 큰돈을 벌수 있는 솔깃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유혹을 일언지하에 뿌리쳤다. 고객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왔던 초등생 아이가 어느덧 성인이 돼 자신의 아이들을 데리고 가게에 와 옛 추억을 이야기 하는 것을 보면 가슴이 따뜻해지면서 무거운 책임감이 생긴다. 많은 사람들의 소중한 추억이 깃든 곳인데 함부로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번은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고객이 정 대표의 손을 꼭 잡으며 대뜸 “고맙다”며 눈물까지 글썽거렸다고 한다. 사연인 즉,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이 공간을 예전 모습 그대로 지켜준 것에 대한 감사함이었다.
고집스럽게 한자리에서 효인방을 지켜 낸 이유다. 그의 피자집엔 눈길을 사로잡은 체험 공간이 있다. 7만5,000여㎡의 드넓은 정원 위에 1만2,000여점의 생활·민속유물이 전시된 ‘청암민속박물관’이 바로 그곳이다. 20년전 문을 열었는데, 효인방과 같이 성장했다. 효인방 바로 옆에 조성된 이곳엔 조선시대 서민의 안방 모습과 1950년대 초등학교 교실의 모습 등을 그대로 재현한 테마 전시관부터 고궁에나 있을 법한 각종 석탑까지 볼거리가 풍성하다. 정 대표가 20년간 꾸준히 수집해온 물품들이다. 이곳저곳을 둘러 보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신기한 것들이 가득하다.
청암민속박물관 문을 열게 된 계기도 고객들을 위해서다. 정 대표는 “피자 맛이 알려진 뒤 가게 앞에 고객들이 길게 줄을 서 기다리는데, 그 모습이 안타까웠다”며 “대기하는 시간에 잠시나마 둘러볼 수 있는 박물관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이제 효인방은 일흔의 나이를 넘긴 정 대표의 장남 석원(42)씨가 경영 전면에 나서 본격적인 2대 가업 시대를 열었다. 석원씨는 해외 유명 브랜드와 중저가 프랜차이즈가 피자 매장을 잇따라 내면서 경쟁이 한층 치열해진 이 때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무한경쟁 속에 코로나19 상황까지 겹쳐 매출이 예전 같지 않은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석원씨의 고민은 역시나 효인방만의 전통을 지키면서 경쟁력을 키우는 묘수를 찾는데 모아진다. 그는 “어느 곳보다 한국적인 피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고, 성과도 많았다”며 “화려한 비주얼의 피자들이 속속 등장하는 시대에 원칙과 기본을 지키면서 효인방만의 경쟁력을 확대시키려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아버지에게 피자 만드는 비법을 전수 받느라 하루가 모자랄 정도라고 한다.
여건은 녹록치 않지만 정씨 부자는 10년 뒤에도, 그 10년 뒤에도 지금의 효인방은 늘 이 자리에 있을 것임을 단언했다. 30년 간 찾아준 충성 고객을 배신할 수 없다는 비장한 각오도 전했다.
“고객들에게 과분한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의 전통방식대로 효인방을 지켜내려 합니다. 피자가 서양음식이긴 하지만, 한국인 입맛에 맞는 다양한 메뉴 개발을 통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피자를 계속 내놓을 계획입니다. 늘 힘차게 도전을 이어가 효인방이 100년 노포(老舖)로 우뚝 서는 게 일생의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