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어떻게 사람을 인지할까

입력
2020.11.21 11:00

극지에서 야생 동물을 연구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이 녀석들이 사람을 알아본다는 것이었다. 지난 2016년과 2017년 여름에 북그린란드 생태 조사를 하면서 8쌍의 긴꼬리도둑갈매기와 7쌍의 꼬까도요 둥지를 관찰했다. 번식 시기가 되면 부모 새들은 새끼를 지키기 위해 예민해져서 사람의 접근을 금방 알아차렸다. 내가 동물을 관찰하는 동시에 동물 역시 인간을 관찰하는 걸까.

집에서 키우는 반려동물이 사람 얼굴이나 냄새를 인지하고 반갑다고 소리를 낼 때는 놀랍지 않았다. 하지만 야생 동물이 사람을 알아보는 건 조금 다른 얘기다. 우선 사람을 개체 수준에서 인지하고 구별하기 위해선 특정인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실제로 조류 가운데 인지 능력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까마귀, 까치, 도둑갈매기 등에서 사람을 알아보는 행동이 보고된 적이 있다. 이를 두고 똑똑한 동물이 사람을 잘 알아본다는 ‘인지 능력 가설’이 나왔다. 하지만 실험실이나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에서 보고된 바에 따르면 쥐, 닭, 토끼, 양, 소, 물범, 펭귄, 심지어 꿀벌도 사람을 알아본다고 한다. 먹이를 주는 사육사를 보면 쫓아다녔고 반대로 반복적인 괴롭힘을 주는 실험자를 보면 도망다녔다. 그렇다면 사람을 구분하는데 굳이 높은 인지력이 필요치 않고, 단순히 반복되는 자극을 통한 학습이 가능할 수도 있다. 이를 ‘반복 자극 가설’이라고 부른다.


긴꼬리도둑갈매기와 꼬까도요를 두고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가설을 검증해보기로 했다. 긴꼬리도둑갈매기는 인지력이 뛰어나서 다른 동물의 먹이를 잡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를 빼앗는 행동으로 유명한 새이다. 반면 꼬까도요는 도둑갈매기와 비교해 인지력이 뛰어나진 않을 거라 예측됐다. 조류 관찰자인 내가 반복적으로 둥지를 방문하자 두 종 모두 경계하는 정도가 증가했다.


초반엔 5~10m 이내 가까이 접근해야 반응하던 녀석들이 며칠 지나면 20~50m 떨어진 곳에서도 금세 날아올라 경계하는 행동을 했다. 그렇게 둥지를 찾아간 지 5일째 되는 날, 이번엔 둥지에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던 새로운 사람을 투입했다. 이때 긴꼬리도둑갈매기는 내가 처음 둥지에 갔을 때 그랬던 것처럼 둥지 가까이에서 접근하기 전까진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이 사람은 누구지? 그냥 지나갈지도 모르니 기다려봐야지’ 하는 것 같았다. 반면에 꼬까도요는 사람이 다가오기 시작하자 나에게 그랬듯이 50m 떨어진 곳에서 경계 행동을 보였다. 인간에 대한 구분 없이 그저 다가오는 자극에 더욱 예민해진 것으로 보였다. 테스트 결과를 놓고 보면 긴꼬리도둑갈매기가 인간을 개체 수준에서 구분했고, 이는 인지 능력 가설을 뒷받침한다.

긴꼬리도둑갈매기는 어떻게 인간도 전혀 살지 않는 고위도 북극에서 사람을 인지하는 능력을 발휘한 걸까. 인간 서식지 근처에 사는 까마귀나 까치는 이를 통해 진화적 이득을 얻었을 수도 있지만, 도둑갈매기한테는 딱히 도움이 되진 않는다. 그저 똑똑한 머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덕분에 불과 4일 만에 구분해낸 것으로 보인다.

이원영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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