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장기화…이제 공연도 '숏폼'으로 간다

입력
2020.11.19 04:30
21면


코로나19로 무대를 잃은 공연계가 이제는 아예 온라인에 최적화된 ‘숏폼’ 제작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공연 실황 녹화물 스트리밍, 온라인 생중계, 콘텐츠 유료화에 이어서 또 한 단계 나아간 시도다. 웹뮤지컬, 웹연극이라는 새 용어도 등장했다. 이미 웹드라마가 점령한 온라인 숏폼 시장에서 ‘웹공연’도 자리잡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최근 공연 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작품은 웹뮤지컬 ‘킬러파티’다. 양수리 저택에서 발생한 살인사건과 범인 찾기 소동을 다룬 코믹 추리극이다. 양준모, 신영숙, 리사, 함연지, 알리 등 인기 배우들이 출연한다. EMK뮤지컬컴퍼니 산하 매니지먼트사인 EMK엔터테인먼트가 제작했다. 편당 10분 안팎 길이에 9개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20일부터 사흘간 케이블채널 샌드박스 플러스에서 방영하고, 23일부터는 네이버 V라이브에서도 유료로 선보인다.

‘킬러파티’는 미국 브로드웨이에서도 제작돼 앞서 8월 공개됐다. 뮤지컬 ‘웃는 남자’를 편곡하고 ‘뷰티풀’로 그래미어워즈를 수상한 제이슨 하울랜드가 미국 버전 제작을 맡았다. 김지원 EMK엔터테인먼트 대표는 “하울랜드와 공연계 불황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다가 웹뮤지컬 제작 아이디어로 발전했다”며 “본 공연 못지않은 음악적 완성도, 전례 없던 색다른 시도로 미국에서도 주목받았다”고 밝혔다.

제작 과정도 코로나19 시대에 맞췄다. 모든 배우들은 각자 집에서 따로 연습하고 따로 촬영했다. 수익이 얼마나 날지 몰라 전 제작진, 출연진은 수익이 발생한 뒤 추후 분배하는 러닝 개런티로 참여했다. 김지원 대표는 “단순히 공연을 찍은 영상물을 넘어 영상물 자체로 완성도와 독립성이 있어야 상업성을 타진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예술의전당이 ‘플레이 클립스’라는 이름으로 선보인 숏폼 연극도 똑같은 고민에서 출발했다. 공연장이 아닌 집에서 영상으로 공연을 보면 아무래도 집중력과 몰입도가 떨어진다. 숏폼 연극을 기획한 예술의전당 영상문화부 강다혜 대리는 “특히 10~20대는 두세 시간에 이르는 공연 영상물의 긴 호흡을 버거워하더라”며 “공연을 기반으로 하되 관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숏폼 형식을 구상하게 됐다”고 말했다.

작품도 젊은층을 위해 청소년극으로 골랐다. 여성용 레오타드를 입으며 입시경쟁의 불안을 해소하는 주인공을 통해 불공정한 경쟁에 내몰린 10대들의 고민을 담아낸 연극 ‘XXL 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이다. 90분짜리 극을 40분으로 압축, 5편으로 나눴다. 이달 말까지 매주 화요일마다 1편씩 공개된다. 1편은 이틀 만에 조회수 1,000건을 넘기며 호응을 얻었다.

숏폼이라 해도 ‘연극성’을 더 강조했다. 무대가 아닌 별도 공간에서 촬영했지만, 그 공간을 무대처럼 구획을 나눴고, 연기도 연극처럼 했다. 강다혜 대리는 “웹드라마와 헷갈리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이런 연출 때문에 관객들이 더 연극으로 받아들였다”며 “이런 시도가 많아진다면 숏폼이 연극을 관람하는 또 다른 방식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대학로에서는 숏폼 제작 논의가 활발하다. 코로나19 장기화를 대비하는 동시에 무대 이전 테스트베드로서 숏폼을 활용하는 것이다. 한 연극 연출가는 “소재는 매력 있지만 줄거리가 길지 않아서 무대화되지 못한 중ㆍ단편 희곡을 숏폼으로 기획하고 있다”며 “숏폼이 콘텐츠 개발 플랫폼 역할을 한다면 공연의 저변도 넓힐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킬러파티’도 추후 영화 버전 개봉과 무대 공연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숏폼이 공연의 본질을 흐릴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무대, 관객, 라이브라는 공연의 핵심 요소가 빠졌기 때문이다. 공연이 웹드라마의 원작 역할만 할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도 없지 않다. 지혜원 경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이제는 제작 방식, 유통 방식으로는 장르 구분을 못 할 정도로 콘텐츠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며 “웹툰과 웹소설이 결국 만화, 소설이듯 새로운 플랫폼 안에서 원래 특성이 잘 결합돼야만 고유의 정체성이 생기고 그에 맞는 관객층을 발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XXL 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의 전인철 연출도 “공연 자체가 흥미롭지 않으면 영상물도 생명력을 갖지 못한다”며 “영상물에 대한 요구가 커질수록 공연이 훨씬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