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대신 땅투기”…제주에 무늬만 농업법인 수두룩

입력
2020.11.17 15:16
농지 되팔아 수십억 매매차익 챙겨
정상운영 법인 10곳 중 4곳 불과
공무원까지 투기 목적 토지 매입



제주에서 농업경영 목적으로 구입한 농지를 되팔아 거액의 매매차익을 챙기는 등 농사 대신 '젯밥'에만 눈이 어두운 무늬만 농업법인들이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제주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지난 8월부터 이달 14일까지 부동산시장 교란행위를 집중 단속한 결과 농지법 위반 행위가 확인된 농업법인 12곳의 관계자 17명과 농지 소유자 188명 등 총 205명을 농지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고 17일 밝혔다. 이번 단속에 적발된 불법거래된 농지는 모두 서귀포시 지역 농지로, 총 8만232㎡으로 파악됐다.

경찰에 따르면 농업회사법인 관계자인 17명은 투기 목적으로 농지를 매매해 총 140억원의 시세차익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농지 매매 과정에서 매수자들에게 제주지역으로 주민등록을 하게 하거나 불법으로 농지를 취득할 수 있도록 도운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A농업법인은 2018년 5월부터 올해 2월 1일까지 서귀포시 안덕면 지역 농지 9필지(2만2,2632㎡)를 20억5,000여만원에 매입한 후 지난해 7월부터 지난 2월 27일까지 타 지역 매입자 28명에게 48억여원에 되팔아 27억5,000여만원의 시세차익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개인 농지 소유자 등 188명은 농지를 매입하면서 농지취득자격증명서 상에 농사를 짓겠다고 해놓고도 실제로 농사를 짓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 중에는 타 지역 공무원 10명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농지는 직접 농업을 하거나 주말·체험영농을 하는 경우 등 농지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소유할 수 있음에도, 이번에 적발된 소유주들은 사실상 투기목적으로 농지를 취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도내 농업법인들이 당초 설립목적과 달리 부동산 매매업과 임대업, 숙박업 등으로 이익을 챙기는 사례는 끊이지 않았다. 농업법인은 농업과 관련된 사업 외에 숙박업, 부동산매매업, 건축업 등을 할 수 없다. 농업법인이 소유한 농지도 농지경영에만 사용해야 한다.

제주도가 지난해 6월부터 11월 실시한 도내 농업법인(영농조합법인·농업회사법인)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도내 농업법인 2,950개 가운데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농업법인은 1,179개(40%)로 전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등록된 농업법인 중 833개는 이미 문을 닫았고, 492개는 소재도 명확하지 않다. 1년 이상 미운영중인 농업법인도 159개로 파악됐다.

특히 61개 농업법인은 부동산 매매업 및 임대업, 숙박업, 건축업, 무역업, 주유소 등의 목적 외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226개 농업법인은 농업인 출자비율 10% 이상(농업회사법인)과 농업인 5명 이상(영농조합법인) 등의 설립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는 실태조사 결과에 따라 목적 외 사업 운영 농업법인과 장기 미운영 농업법인 중 8개 법인은 해산을 완료했다. 또한 16개 법인에 대해서도 해산명령을 청구했고, 나머지 법인에 대해서도 해산명령을 청구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설립요건 미충족 농업법인 중 요건을 충족한 155개 법인을 제외한 76개 법인에 대해 2회 시정명령을 내린 후 1년 이상 미이행 시에는 해산명령을 청구할 예정이다.

앞서 2016년에 도가 도내 농업법인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실시한 결과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농업법인 10곳 중 2곳에 불과했다. 당시에도 부동사, 숙박업, 음식점 등 목적 외 사업을 하는 농업법인들이 대거 적발됐다. 하지만 전수조사 이후 3년이 넘었지만 도내 농업법인들의 비정상 운영은 끊이지 않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제주농민들의 삶의 터전인 농지가 투기의 대상으로 전락한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껴 모든 역량을 동원해 수사를 벌였다”며 “‘경자유전’ 원칙은 헌법에서 규정한 중요한 사안이고, 투기목적의 농지거래는 현행법상 명백한 불법행위”이라고 말했다.

김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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