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사유리씨가 배우자 없이 일본에서 정자은행을 통해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을 한 사실을 최근 언론에 고백하면서 국내 미혼 여성의 정자은행 이용 가능 여부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유리씨는 16일 KBS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는 결혼한 사람만 시험관(시술)이 가능하고 모든 게 불법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현행 생명윤리법에서는 난자나 정자를 기증하거나 체외수정(시험관) 시술을 받을 때 모두 배우자의 서면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미혼 여성이 정자은행을 이용할 수 없는 걸림돌로 여겨져 왔다.
17일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생명윤리법 해당 조항은 ‘배우자가 있는 경우’ 동의를 받으라고 한 것이지 배우자가 없는 미혼 여성의 정자은행을 통한 시술을 막는 규정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제 병원에서는 미혼 여성의 정자은행 이용은 불가능하다. 대한보조생식학회 홈페이지에 게시돼 있는 대한산부인과 보조생식술 윤리지침에는 ‘(배우자의 정자가 아닌 타인의 정자를 이용한) 비배우자간 인공수정 시술은 원칙적으로 법률적 혼인관계에 있는 부부만을 대상으로 시행한다’고 명시돼 있다. 미혼 여성에게는 시험관이나 인공수정 시술을 할 수 없도록 지침이 마련돼 있는 것이다. 대한산부인과협회 김재연 회장은 “생명윤리법에 ‘배우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에 미혼 여성에게는 소극적 금지에 해당한다고 해석한다”고 설명했다.
복지부는 미혼 여성의 시험관 시술을 막는 규정이 없다고 하지만 일선 병원의 사정은 다르다. 조정현 대한산부인과협회 부회장은 “난임 치료에 보험 적용이 되는데, 보험증서에 남편을 기재하도록 돼 있다. 보험 증서 규정을 벗어나 미혼 여성에게 시술을 해 준다면 해당 병원은 제재를 받게 된다”고 말했다.
일본이나 미국은 1960년대부터 정자은행이 설립돼 있지만, 국내에서는 난임 부부조차도 비배우자의 정자를 제공받는 조건이 까다롭고 정자은행 설립과 관련된 법도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출산율(0.918명)과 혼인건수(23만9,200건)가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저출산, 미혼 비율이 높아짐에 따라 규제 완화를 통해 혼인 제도 밖에서 아이를 원하는 경우에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016년 설립돼 한국의 정자은행 관련 데이터를 모으고 지침과 법규를 연구하는 한국공공정자은행연구원의 박남철 이사장(부산대병원 비뇨기의학과 교수)은 “아이를 원하는 미혼 여성들의 경우 경제력과 준비를 갖춰 낳으려 하는 경우가 많다”며 “미국에서는 30년간 100만명의 미혼 여성이 정자은행을 통해 출산한 아이들을 조사한 결과 이들이 더 사회적으로 적응을 잘 했다는 데이터도 있다”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일본은 각 병원의 윤리위원회에서 인공수정 시술을 원하는 미혼 여성에 대한 심사를 거쳐 시술이 이뤄지고, 2013년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영국에서는 레즈비언 부부의 아기 낳을 권리 보장을 위해 난임 병원에서 이들을 상담하는 창구를 따로 두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나 영국은 국립병원에 공공 정자은행을 두고 있는데, 이런 국가들은 출산 여부는 (혼인과 상관없이)개인이 스스로 결정할 문제로 보고 아기를 낳고자 하는 사람에게 정자 접근성을 만들어주는 게 국가의 의무라고 본다”라며 “저출산 문제 해결 방안으로 현재의 각종 수당 지급뿐 아니라 시스템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