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억원 넘는 신용대출을 받은 뒤 1년 내에 규제지역 집을 살 경우 대출을 회수하는 등의 핀셋 대출규제를 발표하면서, 가능한 모든 대출을 끌어모으는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은다는 뜻) 대출’로 집을 사려던 사람들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앞으로 무주택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이 지금보다 어려워질 것이란 예상이 나오는 가운데 대출 시행 전 신용대출을 최대한 받으려는 ‘막차’ 수요도 몰릴 전망이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지난주 발표한 '가계대출 관리방안'을 통해 이달 30일부터 연 소득 8,000만원 이상인 사람이 신용대출을 1억원 이상 받을 경우 개인(차주) 단위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또 신용대출을 1억원 넘게 받은 뒤 1년 내 규제지역에서 집을 사면 대출을 2주 안에 회수한다.
DSR는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 카드론 등을 포함한 차주의 모든 대출에 대해 연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 부담을 따지는 지표다. 현재는 규제지역 내 시가 9억원 초과 주택을 담보로 신규 주담대를 받을 경우 DSR 40%(은행권 기준)가 적용되는데, 연 소득 8,000만원이 넘는 사람이 신용대출을 받는 경우에도 이를 적용한다는 의미다. 고소득자의 신용대출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가고 있는 만큼, 부동산 투기와 신용대출 증가세를 한 번에 잡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런 규제는 당장 내 집 마련을 위해 목돈이 필요한 무주택 실수요자의 돈줄까지 막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전세난에 지친 무주택자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내 집 마련에 나서는데다, 집값 급등으로 대출 없이는 집을 사기 어려운 상황인데 이를 더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아파트 중위가격이 9억원이 넘는 서울처럼 규제지역에서는 통상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최고한도(40%)까지 대출을 받아도 집값을 해결하기 쉽지 않다. 이에 상당수가 모자란 금액 중 1억~2억원 가량은 신용대출로 조달하고 있는데, 이젠 이런 영끌도 불가능해졌다는 의미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이번 대책은 주택 구입시 신용대출을 이용하지 말라는 건데 요즘 신용대출로 집을 사는 사람 상당수는 다주택자가 아니다”라며 “중저가 주택이라도 한 채 구매하려는 무주택자의 신용대출까지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정부 발표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과 주요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는 “전세 가뭄에 대출로 주택 매수를 준비했지만 계획이 틀어졌다”거나 “갖은 노력 끝에 고소득자가 됐고 신용을 바탕으로 돈을 빌리려 했는데, 정부가 사다리를 걷어찼다”는 하소연이 이어지고 있다. 이미 강력하게 실행 중인 주담대 규제에 더해 신용대출까지 옥죄는 것은 ‘옥상옥(屋上屋)’ 규제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대책은 한 마디로 ‘현금부자 아니면 집 사지 말라’는 것”이라며 “무주택자가 주택 한 채를 사는 경우는 예외로 두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대책 시행 전 대출 막차를 타려는 수요도 늘어날 전망이다. 이달 30일 이전 1억원 넘는 신용대출을 받으면 규제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실제 대책이 발표된 지난 13일 오후 시중은행 영업점에는 신용대출 관련 문의가 쏟아졌다. 은행 관계자는 “예비 차주들이 이번 대책을 정부의 ‘영끌 금지령’으로 받아들이면서 당장 자금이 필요 없어도 우선 받아두지 않으면 앞으로는 못 받을 것이라는 불안심리가 커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번 대책에서 2금융권에 대한 DSR 규제 내용이 불명확해 자칫 2금융권으로 대출수요가 몰리는 ‘풍선효과’ 우려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