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아버지 손에 죽는 건 비극이다. 당쟁에 휘말려 사도세자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해석은 통설이었다. 대중이 받아들이기도 쉬웠다. 그러나 10년 전쯤 그 가설이 틀렸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아버지 죽음을 미화하려 정조가 역사 기록을 왜곡했다는 거였다. 정조는 ‘성군’(聖君)으로 통한다. 그럴 리 없다는 반박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껏 학계에서 본격 공방은 드물었다.
이제야 제대로 된 판이 깔렸다. 13일 학계에 따르면 서울대 동아문화연구소가 ‘사도세자의 죽음과 영ㆍ정조 시대’를 주제로 16일 학술 토론 자리를 마련한다. 오후 5시부터 2시간에 걸쳐 ‘줌’(Zoom)을 활용한 화상 회의 형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주제 발표자는 정병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다. 2012년 펴낸 저서 ‘권력과 인간’을 통해 그는 사도세자의 죽음이 당쟁으로 인한 것이라는 당시 역사학계 통설을 부정했고, 논쟁의 계기가 마련됐다. 그러나 기대한 만큼 학계가 끓지는 않았다. 논문 실적 경쟁이 마땅한 토론 공간을 좁히고 의욕도 꺾은 탓이다.
이번 발표는 정 교수가 연구소에 제안해 성사된 것이다. 전공학자들의 비판적 서평이나 반박이 없지 않았던 만큼 그런 비평들에 대해 오래 침묵하는 건 학자로서의 직무 유기일 수 있다는 게 정 교수의 생각이었다. 그는 “우리 학계가 더 성장하려면 건전한 논쟁이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도 늘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발표문 ‘사도세자의 죽음을 둘러싼 논쟁’을 통해 정 교수는 △사도세자의 사인을 둘러싼 논란 △영조의 용서와 후회 △정조의 사도세자 전기 왜곡 의혹 등과 관련한 쟁점을 짚고 ‘한중록’ 등 사료를 근거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계획이다. 사도세자가 부왕 영조와의 불화 끝에 광증(狂症)이 생겼고 영조를 위협하는 행동(반역)을 하다 처벌을 받아 죽었다는 게 그가 내린 결론이다. 또 사도세자 사후에 영조가 아들을 죽인 일을 후회하거나 그를 용서했다고 믿을 만한 정황 근거가 희박하며 사도세자가 당쟁의 희생양이라는 가설은 정조가 조작한 기록을 곧이곧대로 믿은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고 그는 주장할 예정이다.
토론자는 6명이다. 최성환 서울대 역사교육과 교수와 정해득 한신대 국사학과 교수,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교수 등 3명의 역사학자가 대체로 정 교수와 반대편에서 집중 토론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패널 토론자로 참가하는 김문식 단국대 사학과 교수, 백승호 한남대 국문학과 교수, 박범 공주대 사학과 교수 등은 질의ㆍ논평ㆍ제안을 담당한다. 사회는 이경구 한림대 한림과학원 교수가 맡는다.
연구소는 “조선 후기 영ㆍ정조 시대의 시대상을 이해하게 해 주는 주요한 사건인 사도세자의 죽음은 영화 등 대중 문화를 통해서도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 사건의 성격ㆍ의미를 이해하는 다양한 시각이 공존하는 것도 사실”이라며 “이에 이 문제를 천착해 온 연구자들이 논쟁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13일까지 정해진 주소(https://forms.gle/NkQwP73Pbe3tz5Wp8)로 신청하면 회의를 참관할 수 있다. 소장인 김병준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는 “학계 내 비판적 논쟁을 유도한다는 취지에 따라 지금껏 통상 저서를 출간한 학자를 초대해 북 콘서트 형식으로 행사를 치러 왔다”면서도 “하지만 정조와 관련한 이번 주제에 대중적으로 이목이 쏠려 있는 만큼 일반에 행사 참관 기회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