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의현(84) 전 총무원장이 대한불교조계종을 다시 분열에 빠트렸다. 승려 신분을 회복한 데 이어 원로 지위까지 받을 분위기여서다. 추진하는 쪽에서는 ‘종단 화합’을 내세우지만, 반대하는 이들은 1994년 종단 개혁에 대한 부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11일 불교계에 따르면 조계종은 5일 개회한 중앙종회 정기회에 대종사 법계 동의안이 제출됐는데, 동의 대상자 23명 가운데 서 전 원장이 포함됐다. 대종사는 6단계에 이르는 비구승 법계 중 가장 높다. 한마디로 종단 내 존경 받는 어른이다. 대종사는 실제 종단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원로회의 의원이 될 수 있다.
이 안건은 12일 회의에서 의결된 뒤 연말쯤 원로회의 인준을 받으면 확정된다. 조계종 관계자는 “안건이 중앙종회에 회부됐다는 건 실무 검토 작업이 다 끝났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대로 확정되는 수순이라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조계종이 발칵 뒤집혔다. 서 전 원장이 대표적 ‘권승(權僧)’으로 낙인 찍혀 26년 전 조계종에서 축출된 사람이어서다.
서 전 원장은 전두환ㆍ노태우 정권 때 총무원장을 지냈다.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비판을 받았는데도 총무원장 3선에 도전했는데, 이에 반대하는 승려들을 조직폭력배까지 끌어들여 제압했지만, 저항이 확산되자 결국 총무원장 직을 사퇴했다. 1994년 일반 승려 3,000여명이 참여한 전국승려대회에서 서 전 원장의 ‘멸빈’(승적 영구 박탈)이 결의됐고, 조계종 호계위원회(종단 내 법원)는 같은 내용의 징계를 결정했다. 이른바 ‘94년 조계종 사태’로 불리는 일로, 조계종은 서 전 원장을 축출한 뒤 독재적인 총무원장이 다시 출현하는 것을 막기 위해 비대해진 총무원 조직을 쪼개는 등 여러 개혁 조치를 취했다.
서 전 원장의 ‘컴백’은 5년 전에 예고됐다. 서 전 원장은 2015년 갑자기 “징계 당시 통보를 받지 못했다”며 재심을 청구했고 재심 호계원은 ‘승적 박탈’에서 ‘공권정지 3년’으로 징계 수위를 대폭 낮췄다. 승적 회복의 길을 터준 결정이었다. 당장 멸빈자에게 승적을 회복시켜주지 않는 종헌에 위배되는 행위라는 강한 비판론이 쏟아졌고 그러자 자승 당시 총무원장조차 “논란이 종식될 때까지 재심 판결을 이행하는 후속 행정 절차는 보류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조계종은 포기하지 않았다. 10년 단위로 종단 소속 승려임을 확인하는 ‘승려 분한(分限)’ 신고다. 공권정지 3년이 지났다고 판단한 서 전 원장은 올해 신청서를 냈고 총무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조계종이 내세우는 명분은 ‘종단 화합’이다. 오래 전 일이니 이제 그만 스님으로 살게 해주자는 얘기다. 2017년 총무원장에 취임한 설정 스님은 그 당시 이미 “절집을 나가지 않고 계속 살고 있는 사람에게 자비문중(불교)에서 멍에를 계속 씌워야 되느냐”고 말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대구 동화사의 방장이자 조계종 종정(최고 어른)인 진제 스님을 배후로 지목하는 목소리가 높다. 진제 스님은 2015년 서 전 원장 재심 당시 교시를 내려 사면을 독려했고, 2018년에는 서 전 원장에게 “고생많았다”며 가사(승려의 법의)를 전달하기도 했다. 서 전 원장은 현대 동화사에서 회주(법회를 주관하는 사찰 큰 스님)로 활동 중이다.
자승 전 총무원장과 갈등을 빚다 2017년 제적된 명진 스님은 “94년 종단 민주화 개혁으로 총무원장에게 집중됐던 권력이 종회 의원들에게 분산됐지만 그들이 다시 권력화하면서 개혁이 실패로 끝났다”며 “과거 권력 재등장은 이런 종단 보수화의 상징적 사건”이라 비판했다. 전국민주연합노조 조계종 지부는 이날 성명을 내어 “94년 종단 개혁은 구체제에 대한 전면적 저항이자 제도 개혁과 인적 청산 과정이었고 그 인적 청산의 상징적 대상이 바로 서 전 원장이었다”며 “현 총무원 집행부는 종헌종법을 부정하고 개혁 정신을 훼손하고 사부대중을 기만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