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 출전 이유? 한풀이 도우려는 후배들 덕

입력
2020.11.09 07:30

“선수들이 ‘큰 형님 가시는 길 트로피 하나 더해드리자’는 데 의지를 보여서 출전하게 됐습니다.”

K리그1(1부리그) 우승컵을 손에 들고 화려하게 은퇴식을 치른 이동국(41)이 대한축구협회(FA)컵 결승전에 모습을 드러냈다. FA컵 우승컵과 연이 멀었던 그를 위한 감독 및 후배들의 배려 덕이었다. 후반전이 다 끝나갈 무렵 그라운드를 밟은 이동국은 10번째 우승컵을 안아 든 채 선수 생활을 마쳤다.

이동국은 지난 8일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0 하나은행 FA컵 울산과의 결승 2차전 교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연신 몸을 풀던 이동국은 경기 막바지 전북쪽으로 승기가 완전히 기울게 되자 구스타보(26)와 교체돼 그라운드를 밟았다. 이날 전북은 울산에 2-1로 승리해 구단 사상 첫 더블이자 한국 축구 역사상 두 번째 더블을 기록했다.

FA컵 우승컵을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한 이동국은 팀의 배려로 한을 풀게 됐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 참석한 조제 모라이스(55) 전북 감독은 “이동국 선수가 커리어 동안 FA컵 우승컵을 들지 못해 이에 대해 미리 이야기를 나눴다”며 “선수들도 큰형님 가시는 길에 트로피 하나 더 올려드리자는 의지를 보여, 이동국이 출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후배들은 이동국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경기를 뛰었다. 이날 전북은 전반 4분 만에 울산에 선제골을 내어줬지만 후반 들어 이승기(32)가 멀티골을 작성하며 역전 우승을 쟁취했다. 이승기는 “동국이형이 경기 때문에 어제 팀에 합류하셨다”며 “선수들끼리 동국이형 가는 길에 우승 트로피를 두 개 들게 하자고 말을 많이 했고, 오늘도 잘하려 최선을 다했는데 서로 웃으며 우승컵을 들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이동국도 기쁜 순간을 만들어준 이승기에게 ‘오늘은 네가 주인공이다. 고맙다’며 인사를 건넸다.

시상대에 오르기 전 이동국은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한 울산 후배들을 격려하는 듯 한 명 한 명 인사를 나눴고, 시상대 옆에서 김도훈(50) 울산 감독과 짧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시상대에 올라온 이동국은 프로 경력 10번째 우승컵을 품에 안았고, 웃음 가득한 얼굴로 트로피를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전북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우승으로 ‘트레블’까지 노리고 있지만, 이동국의 동행은 아쉽지만 여기까지다. 모라이스 감독은 “이동국은 ACL을 위해 함께 출국하지 않는다”며 “오늘 경기가 이동국의 마지막 경기가 되는 걸로 이야기 했다”고 했다.

전주= 오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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