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면죄부를 받지 않았다. 퇴임 후 기소될 수도 있다.”
지난해 의회 청문회에서 로버트 뮬러 전 특별검사가 ‘러시아 스캔들’과 관련해 내놓은 논평이다. 뮬러의 말마따나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을 떠나 ‘자연인’이 되는 순간, 그를 기다리고 있는 소송은 한 둘이 아니다. 탈세, 성추문, 명예훼손, 사법방해 등 거리도 다양하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그토록 재선에 목을 메고 있는 배경에 사법처리를 피하기 위한 목적도 있을 것으로 본다. 지난달 16일(현지시간) 조지아주(州) 유세에서 한 “(패배하면) 아마도 나는 이 나라를 떠나야만 할 것”이란 발언이 괜한 푸념은 아니라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이 맞닥뜨릴 줄소송의 단초는 ‘성추문 입막음’ 의혹 수사다. 뉴욕 맨해튼 지검이 수사 중인 해당 의혹은 2016년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과 성관계를 했다고 주장한 여성 2명의 입을 막기 위해 거액을 지급한 것과 관련됐다. 하지만 의혹은 엉뚱한 데로 번졌다. 검찰이 트럼프 대통령의 ‘집사’ 마이클 코언이 무마 비용을 건네는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트럼프 그룹이 관여했는지를 들여 보다 금융, 납세, 보험 사기 등 불법 혐의가 줄줄이 터져 나온 것.
검찰은 지난해 8월 트럼프 대통령 개인과 트럼프 그룹에 8년치 납세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그러나 트럼프 측은 대통령 재임 중 형사소추를 금지하는 ‘면책 특권’을 주장하며 맞섰고, 수사는 일시 중단된 상태다. 문제는 퇴임 뒤다. 그가 백악관을 떠나야 하는 내년 1월 20일 낮 12시부터 ‘방패’는 사라지게 된다.
조 바이든 당선인이 트럼프 대통령을 옥죌 가능성도 있다. 대선을 앞두고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제기한 납세 의혹과 관련해서다. NYT는 9월 트럼프 대통령의 20년치 소득신고 자료를 토대로 그가 2016ㆍ2017년 연방소득세로 각각 750달러(84만원)만 냈다고 보도했다. 미국에서 탈세는 연방법에 반하는 중범죄로 취급되는 만큼 기소 위험성도 크다. 뉴욕주 검찰도 트럼프 측의 납세 사기 혐의를 수사하고 있다. 지난달엔 차남 에릭이 원격으로 관련 조사를 받았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성추행 관련 명예훼손 소송도 트럼프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 잡지 엘르의 칼럼니스트였던 진 캐럴은 지난해 그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1990년대 뉴욕의 한 백화점 탈의실에서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폭로한 것에 대해 대통령이 부인 과정에서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진행한 TV 리얼리티쇼 ‘어프렌티스’의 출연자 서머 저보스도 대통령을 성추행에 근거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상태다.
임박한 소송전에 맞서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방송인으로 변신하거나 다른 공직 취임을 노릴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7일 “트럼프는 관심을 유지하고 필요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계획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500곳 넘는 사업체 운영 재개 여부 역시 결정해야 한다. 경제전문매체 포브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트럼프 대통령의 순자산이 10억달러 감소한 것으로 추산했다. 그가 아예 새 정당을 만들 거나 공화당 후보로 대선에 재도전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미 역사상 연임에 실패한 뒤 4년 후 선거에 출마해 정권을 탈환한 경우는 제 22ㆍ24대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 단 한 명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4년 후에도 출마 자격을 갖고 있을지는 미지수다. 눈 앞에 놓인 소송의 덫에서 빠져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