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했던 엄마와 연 끊은 지 2년 … 잘못일까요

입력
2020.11.09 04:30
24면

편집자주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한국일보>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저는 2년 전 엄마와 연을 끊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네 살 때 돌아가셨고, 엄마는 3년쯤 뒤에 재혼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엄마도 많이 힘들었을 것 같지만, 엄마는 어린 저와 동생을 학대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폭언을 퍼붓고 자주 때렸어요.

엄마는 성격이 드세고 거친 말로 화를 풀었어요. 기분 나쁘면 설거지 안했다며 제 머리채를 잡고 주먹으로 때렸어요.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은혜도 모르는 이 나쁜 X, 내가 너 같은 걸 낳고 미역국을 먹었다, 필요 없으니깐 나가라, 네가 도대체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뭐야, 왜 맨날 그 모양이야”라는 얘기를 귀 아프도록 들었어요.

엄마는 단 한번도 저를 따뜻하게 감싸주지 않았어요. 말썽 피운 적도 없었는데 항상 못마땅한 얼굴로 질책만 했어요. 게으르고 잠이 많다고, 집안일을 제대로 안 한다고 소리를 질렀어요. 용돈을 달라 하면 나가서 돈 벌어오라고 야단쳤습니다.

새아버지는 무뚝뚝했고 무관심했어요. 성적표를 보거나 생일을 챙긴 적도 없어요. 엄마가 화내면 되레 ‘왜 애들을 때리고 그래'라고 말려주는 정도였어요. 저와는 큰 갈등이 없었지만, 두 분끼린 많이 다퉜어요. 고성과 폭력이 오갔습니다. 그런 날엔 방에 숨어 불안에 떨었습니다.



성인이 되고 독립하면서 그래도 나아졌어요. 좋은 남편 만나 예쁜 아이도 낳았어요. 2년 전 저는 세 살 아들과 엄마를 뵈러 갔어요. 아이 낳고 엄마를 만난 건 두 번째였는데 엄마는 할 일이 있어 나간다 했고, 그런 엄마에게 제가 서운한 티를 내니까 엄마는 눈을 부릅뜨고 욕하면서 화를 냈어요. 어릴 적에는 소리 지르면 듣고 때리면 맞았지만 그날은 저도 당하지만 않았어요. 제가 대들고 싸움이 커지자 아이가 놀라서 울었고, 저는 아이를 안고 뛰쳐나와 집으로 왔습니다.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그 뒤론 엄마 연락을 안 받아요. 다시 보면 싸우고 화해하는 지옥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 같아서요. 엄마를 생각하면 분노와 증오가 올라오지만, 한편으론 불쌍하고 또 보고 싶고 그래요. 동생에게 얼핏 듣기로 엄마가 미안해한다 합니다. 그럴 때면 이대로 엄마를 안보고 사는게 맞는지 헷갈려요. 제가 잘못하는 걸까요.

김혜원(가명ㆍ34세ㆍ주부)



혜원씨, 아무리 큰 상처를 주고 안보고 살고 싶은 부모라도 그 부모와 연을 끊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부모와 연을 끊으면 누구나 괴롭고 고통스럽기 마련입니다. 어떤 부모였건 간에 부모라는 존재는 생명의 시작이자 성장하는 내내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지요. 이유를 불문하고 부모와 연을 끊는다는 건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다시 엄마에게 연락하세요’라는 얘기는 절대 아닙니다. 저는 당신이 그렇게 결정한 것이 불효의 행동이라기 보다는 혜원씨 스스로가 자신을, 그리고 어머니를 잘 알고 있기에 마음의 고통을 안고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생각해요.

어렵고 힘든 결정을 내리고도 당신의 마음이 불편하고 여전히 신경이 쓰이는 이유는 뭘까요. 당신을 학대했던 어머니에 대해 미안함과 죄책감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먼저 혜원씨 어머니가 어떤 분이었는지를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제가 늘 얘기하듯 혜원씨 어머니가 악한 사람이거나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아니었을 겁니다. 다만 엄마의 역할을 잘 하지 못했고, 자식에게 줘야 할 가장 기본적인 사랑을 주지 못했어요.

혜원씨 어머니는 감정조절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고, 내면의 어떤 감정이 건드려지면 아주 작은 일도 큰 일로 받아들였을 거예요. 좋게 말하면 될 걸 성질내고, 별 것 아닌 일에도 크게 화냈죠.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나 가장 약자인 자식에게 화를 내고 자식을 탓했어요. 부모가 사랑과 보호를 해주기는커녕 공격을 하니 어린 자식은 어디로 도망갈 수 있었을까요. 참 버겁고 힘든 부모이지요.



이런 부모 아래에서 크면 자식들은 ‘내가 가치있는 존재’라는 자긍심을 느끼지 못합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으로 크려면 어렸을 때 부모가 조건 없이 아이를 존중해줘야 해요. 일상에서 애정 어린 안부를 묻고, 다정하게 말해주고, 아이의 마음상태에 관심을 가져주고, 능력이나 결과와 관계없이 있는 그대로 아이의 모습을 받아들여주는 방식으로 아이라는 존재 자체를 인정해줘야 합니다. 공부를 잘 하거나 부모 마음에 드는 행동을 했을 때만 칭찬해주면 아이는 ‘잘하지 못하면 존재 가치가 없다’라고 느끼지요.

사람은 뭔가 특별하게 잘해야만 가치가 있는 게 아닙니다. 결과에, 조건에 상관없이 존중받는 게 중요한데 혜원씨 어머니는 존중은 커녕 ‘넌 왜 맨날 그 모양이니’라는 식으로 당신을 비난했어요. 어머니는 자신의 삶의 고통을 어린 혜원씨에게 독설로 뿜어댔던 거지요. 미안하다거나, 네게 그러는 게 아니었다는 말은 단 한번도 하지 않았어요.

어린 당신은 언제나 혼났고, 감정조절을 못하는 어머니의 감정받이가 됐고, 어머니 인생의 고통과 불만이 당신 탓인 것처럼 느껴졌을 거예요. 가끔은 ‘태어나지 않았어야 하나' 고민도 했을 거예요. 심사숙고 끝에 결정을 내려도 자신 없고 후회가 됐을 거예요. 언제나 비난받는 것으로 끝나니까요.

어머니와 연락을 끊은 건 당신 인생에서 처음으로 어머니를 상대로 행한 주도적인 결정입니다. 당신이 주도적으로 삶을 살아본 경험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 어려운 결정이 굉장히 힘들었을 거예요. 왜 안 그렇겠습니까. 저는 당신의 오랜 고통을 잘 이해하고, 수많은 고민 끝에 내렸을 그 결정을 깊이 존중합니다.

혜원씨. 어머니와 연락을 끊은 걸 여전히 고민하는 건 당신이 지극히 보통의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어떤 부모였는지를 막론하고 부모에게 그렇게 했다는 보편적인 미안함과 죄책감이 있는 거지요. 지극히 인간다운 아픔이고 고뇌입니다.



어머니와 연락을 끊은 것이 불편한 게 지극히 인간다운 일이듯, 어머니와 연락을 끊은 그 이유도 어떤 면에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혜원씨가 아이를 걱정했기 때문이지요. 이제 겨우 어머니로부터 벗어나서 사랑하는 배우자와 가정을 일구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어머니는 변하지 않을 테니까요. 어머니가 당신을 뒤흔들 것임을, 당신이 그런 어머니를 감당하지 못하리라는 걸 당신 스스로 잘 알고 있지요.

그래서 당신의 결정은,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겁니다. 어머니와 달리 혜원씨는 보호해야 할 가장 중요한 대상이 어린 아이라는 걸 잘 알고 있는 거지요. 어머니를 계속 만나면 어머니가 뿜어대는 화와 분노, 공격으로부터 아이를 지킬 수 없었을 겁니다. 당신 삶의 최우선 순위인 아이를 지키기 위해 어머니와의 연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는 걸 저는 잘 알고 있어요. 당신이 불효자여서도, 배은망덕한 사람이어서도 아니에요. 아이를 우선순위에 두는 부모로서 지극히 인간적인 결정입니다. 당연히 쉽지 않았겠지요. 하지만 아이한테만큼은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그렇게 결정을 한 데 대해 저는 아이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낍니다.

혜원씨. 앞으로도 불편한 마음이 들 거예요. 그럴 때에 어머니와 당신을 한 인간으로서 탐색해보는 게 도움이 될 거예요. 어머니를 부모자식 관계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이해해보고, 당신이 어머니로부터 받았던 부정적인 영향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당신이 받았던 부정적 관계를 아이에게 대물림 하지 않을 수 있어요. 매우 다행스러운 것은 당신의 결혼 이후 삶은 편안하고 안정돼 보인다는 겁니다. 혜원씨 부모는 부족했더라도 당신만은 당신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는 부모가 될 것이라 저는 굳게 믿어요.

정리=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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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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