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진화한다, '레이어드 홈’

입력
2020.11.07 11:00
23면

편집자주

요즘 사람들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돈을 쓸까? 우리나라 소비시장에서 발견되는 주요 트렌드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향후 기업과 시장에 가져올 변화 방향을 예측해본다.



코로나19 시대에 가장 주목받는 플랫폼은 무엇일까? 배달 플랫폼, 온라인쇼핑 플랫폼, 커뮤니티 플랫폼 등이 떠오르겠지만, 정답은 다름 아닌 ‘집’이다. 바이러스의 위협을 피해 공부, 업무, 운동, 취미 활동은 물론 사교활동까지도 모조리 집에서 해결해야 하는 ‘집콕’시대가 도래한 까닭이다.

시장전문가들은 사회의 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사람들의 관심사가 '의-식-주' 순서로 확대된다고 주장한다. 패션, 외모에 신경 쓰다가, 그 이후 먹방, 쿡방 같은 식생활 관여가 커지고, 마지막으로 주거에 대한 쏠림이 강해진다는 뜻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 소비시장에서 주거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은 언제쯤 폭발할 것인가'의 이슈는 그 동안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중요한 화두였으나, 생각보다 그 동안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 변화를 코로나19가 가속화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앞당겨진 주거의 변화는 어떤 모습일까? 이에 대해 ‘레이어드 홈(layered home)’이라는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마치 여러 벌의 옷을 겹쳐 입어 멋을 부리는 레이어드 룩 패션처럼, 집이라는 공간이 주거의 기본 기능에 새로운 기능을 겹치듯 덧대어 무궁무진한 변화의 양상을 보여준다는 의미다.

레이어드 홈의 가장 기초적인 층위는 집 본래의 기능을 강조한 ‘기본 레이어’다. 반강제적으로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자 휴식, 수면 등 원래의 안식처로서의 집 기능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여기서 나타나는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바로 ‘교체 주기 축소’와 ‘고급화’다. 사실 침대, 소파, 책상 등 내구재는 스마트폰, 의류 등에 비해 교체 주기가 비교적 긴 편이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특별히 어디가 망가지거나 이사 같은 큰 이벤트를 앞둔 경우가 아니라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물건이다. 그런데 레이어드 홈 트렌드에서는 이런 내구재에 돈을 쓰는 것이 전혀 아깝지가 않다. 집 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내구재에서 얻는 효익도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레이어드 홈의 두 번째 층위는 집 밖에서 수행하던 활동들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응용 레이어’다. 사회가 고도화되면 집 안에서 하던 많은 활동이 집 밖으로 나간다. 학업, 근무는 물론, 운동, 세탁, 미용 등이 지속적으로 외주화된다. 코로나19는 이러한 변화의 방향을 다시 집으로 향하게 했다. 응용 레이어에서의 주요 화두는 ‘새로운 공간 확보’와 ‘솔루션화’다. 건설사에서 제공하는 알파룸은 천편일률적인 사용에서 벗어나 운동룸, 취미룸 등으로 변신한다. 확장하는 것이 당연했던 발코니 공간도 홈캠핑, 홈카페로 꾸미는 등 재조명받고 있다. 새로운 공간 확보가 어려운 경우에는 새로운 솔루션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설치하면 어떤 공간도 운동 공간으로 변신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스마트 미러’가 대표적이다.

마지막 층위는 ‘확장 레이어’로 집의 개념이 집 근처, 동네로 확장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재택근무 시대에는 집과 지하철이 가까운 ‘역세권’ 개념보다 집 안에서 해소하지 못하는 부족한 것들을 집 근처에서 해결하는 ‘슬세권’ 개념이 훨씬 더 중요할 수 있다. 집 근처에 기분 전환할 카페가 있는지, 급할 때 뛰어가 장을 볼 수 있는 작은 슈퍼마켓이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투자 자산으로서의 집에서, 거주를 위한 집으로 집이 변신하고 있다. 집이 변하면, 집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모든 소비 활동 역시 진화한다. 집은 곧 일상을 창조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미래 소비산업의 요람은 단언컨대, 집이 될 것이다.

전미영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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