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신료의 매력은 무엇일까? 지금은 향신료가 다양한 식재료 중의 하나로 취급받지만 과거 유럽에서는 금보다 귀한 대접을 받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정향(clove), 계피, 후추인데 우리나라에서 정향을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향신료는 씨, 뿌리, 껍질 등을 이용하는데 정향만 유일하게 꽃봉오리를 쓴다. 높이가 20m까지 자라는 나무의 꽃인데, 꽃이 벌어지면 향기가 날아가 향신료로 가치가 없어지기 때문에 1㎝ 정도의 꽃봉오리일 때 채집을 하여 말린 것이다. 모양이 못(Nail)과 비슷해서 정향(丁香)이라 하고 영문명도 라틴어로 '못(clavus)‘에서 유래했다.
이런 정향의 주 향기물질이 유제놀로 향기성분의 70~85%를 차지하여 정향을 아는 사람은 유제놀의 냄새만 맡아도 바로 정향을 떠올릴 정도다. 그런데 정향을 모르는 사람에게 유제놀을 맡게 하면 대부분 ‘치과 냄새’를 떠올리면서 전혀 매력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유럽인들은 고작 치과냄새(?)에 불과한 정향에 그렇게 매료된 것일까?
정향은 고대 이집트, 로마, 중국 등에서 음식에 풍미를 더하기 위해 사용하는데, 중국에서는 기원전부터 궁중의 관리들이 황제를 알현할 때 입 냄새를 없애기 위해 이것을 입에 품어서 ‘계설향’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다 중세 이슬람의 상인들을 통해서 지중해 지역에 알려지게 되었고, 당시에 단조로운 음식에 맛을 일깨워 주었다. 그러면서 점점 인기가 증가하여 15세기에는 인도네시아를 배경으로 유럽의 국가들이 막대한 이권이 걸린 향신료에 국운을 걸고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향은 진통기능이 민간요법에서 특효약이었고, 1976년 개봉한 더스틴 호프만이 주연한 ‘마라톤 맨’에도 등장한다. 한 치과의사가 치과도구로 고문하는데 치과의사는 호프만의 멀쩡한 치아를 뽑아 극심한 통증을 경험하게 한 뒤 유제놀을 발라주면서 통증이 싸악 사라지는 천국을 경험하게 하는 식으로 고문을 한다. 영화에서 실제 고문하는 시간은 아주 짧은데 워낙 인상적인 장면이라 많은 사람들이 기억한다고 한다. 과거 서양인에게 정향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아라비아와 같은 전설의 땅에서부터 온 신비한 물건으로, 그 냄새로 인간에게 천국의 한 자락을 제공했다고 하는데, 실제 통증이 있는 사람에게는 잠시 통증에서 벗어나는 천국을 경험하는 기능도 있었던 것이다.
요즘도 유제놀을 치과치료에서 사용하는데 단지 사람들이 그것이 유제놀인지도 진통작용을 하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아무런 마취를 하지 않고 치료를 하다가 그 통증이 극에 도달할 즈음에 유제놀을 발라주면 그 냄새와 함께 통증이 싸악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그 향을 천국의 냄새라고 할 텐데, 요즘은 워낙 기술도 좋아 미리 충분히 진통처리를 하기 때문에 치료가 끝난 뒤 뭔가 얼얼하고 불쾌한 경험의 냄새로만 기억하는 것이다. 그러니 과거에 정향을 금보다 귀한 대접을 받았다는 것을 쉽게 납득하기 힘든 것이다. 향신료의 매력을 단순히 향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면은 살리실산메틸이나 멘톨 같은 향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살리실산메틸은 노루발풀 같은 약용식물뿐 아니라 홍차와 같은 평범한 식물에도 있는 냄새물질이다. 사실 홍차의 여러 향기물질 중에서 가장 먼저 그 실체가 밝혀진 물질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그 냄새를 맡게 하면 파스나 안티푸라민 같은 약을 떠올린다. 과거에는 요즘 같은 합성약이 없었고, 자연 식물 중에 약리작용이 있는 것을 찾아 사용했는데, 서양에서는 노루발풀이 대표적인 식물이었고, 그 식물의 약리성분인 살리실산메틸인데 우리는 살리실산메틸의 냄새를 천연 식물이 아니라 약품으로 먼저 접했으니 음식에서 그 냄새가 나면 기겁을 할 것이다. 멘톨도 비슷한 경우인데 멘톨은 원래 박하 잎 성분이고, 과거에는 요리에도 제법 사용되었다. 그런데 시원한 청량감이 워낙 매력적이라 치약 같은 위생용품에 워낙 많이 쓰게 되면서 음식에는 점점 덜 쓰게 되었다. 그러니 민트초코처럼 음식에 멘톨을 넣으면 치약냄새가 난다고 한다. 원래 치약에는 아무 냄새가 없는데 그렇다. 향의 호불호는 이처럼 맥락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