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현지시간) 마무리된 미국 대선 22개월의 대장정은 4년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백악관 입성 때부터 예견됐듯 극적인 사건과 반전의 연속이었다. 탄핵 심판에 넘겨진 역대 세 번째 현직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썼던 트럼프는 상원 투표에서 면죄부를 받았고,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는 '대세론'에도 경선 초반 4, 5위까지 떨어졌다가 기사회생했다. 특히 대선의 해 미국 전역으로 확산한 바이러스는 대통령마저 감염시키며 선거운동 양상을 확 바꿔놨다.
지난해 1월 민주당 차기 주자들이 잇달아 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본격적인 레이스가 시작됐다. 바이든 후보는 그 해 4월 말 “미국을 미국으로 만들었던 그 모든 것이 위험에 처했다”며 세 번째 대권 도전을 선언했다. 사실상 공화당 단독 후보였던 트럼프 대통령도 두 달 뒤 플로리다주(州) 올랜도에서 재선 도전을 공식화했다.
올해 2월 시작된 민주당 예비경선에서 초반 신예 피트 부티지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등 라이벌들의 기세에 밀려 고전하던 바이든 후보는 14개 주 대의원이 걸린 3월 초 ‘슈퍼 화요일’ 압승을 계기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후 4월 8일 샌더스 의원의 경선 하차 선언과 함께 일찌감치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됐고, 8월 전당대회를 거쳐 공식 선출됐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같은 달 열린 전당대회 마지막 날 권한 남용 비판에도 백악관에서 수락 연설을 강행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가장 큰 악재가 된 건 단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였다. 그간 자랑해온 고용 성과는 코로나발(發) 실업대란으로 허무하게 무너졌고, 부실대응 논란만 남아 야당에 공세 빌미를 줬다. 대유행의 심각성을 외면하며 비과학적 주장을 쏟아냈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사흘간 입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이번 선거에선 대규모 현장 유세가 줄어든 대신 ‘드라이브인 유세’ 등 진풍경이 연출됐으며, 양당 전당대회는 화상 방식으로 비교적 조용히 치러졌다.
대선후보 TV토론 풍경도 달라졌다. 코로나19 감염 방지를 위해 후보간 악수는 생략됐고, 방청객 수도 기존의 10분의1 수준인 60~70명으로 제한됐다. 지난달 7일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상원의원간 부통령 토론에서는 투명 아크릴 차단막이 설치되기도 했다. 이와 별개로 9월 29일 열린 대선후보 간 첫 TV토론은 막말과 과도한 끼어들기로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달 23일 마지막 토론 때는 같은 사태를 피하기 위해 ‘음소거 버튼’까지 동원됐을 정도다.
탄핵과 인종 갈등은 미국사회를 양극단으로 갈라놨다. 지난해 9월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은 ‘우크라이나 스캔들’ 관련 탄핵 조사 개시를 전격 선언하고 12월 18일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어진 탄핵심판에서도 결정적 증거가 나오지 않았고, 상원 다수당인 공화당이 대통령 엄호에 나서면서 올해 2월 5일 이변 없이 기각됐다. 이 과정에서 양당 지지층은 더욱 결집해 국론 분열만 심화했다는 평가다. 5월 25일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 이후 촉발된 전국적인 인종차별 반대 시위도 정치 갈등을 폭발시키는 계기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부 과격 시위대의 폭력 행위를 부각하고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한편, 백인우월주의를 묵인하면서 지지층 결집을 노렸다.
9월 18일 타계한 ‘진보의 상징’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의 후임 인선 문제도 선거 막판 돌발 변수로 떠올랐다. 민주당은 대선이 임박한 만큼 차기 대통령이 다음 대법관을 임명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달 26일 보수 성향의 에이미 코니 배럿 제7연방항소법원 판사를 지명했다. 이후 상원 공화당이 청문회 등 인준 절차를 한 달 만에 속전속결로 마무리해 지난달 26일 당론투표로 인준안을 통과시키며 대선 8일 전 연방대법원 이념 지형을 ‘보수 절대우위’로 재편했다. 이미 1억명에 육박하는 유권자들이 사전투표를 마친 가운데 대선일 이후 우편투표를 둘러싼 불복 소송전이 이어지면 대법원이 대통령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