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은 두 겹의 얇은 막(심낭)이 주머니처럼 감싸고 있다. 심낭은 심장이 끊임없이 수축하고 이완할 때 겉면 마찰을 막아주는 보호막이다. 이러한 심낭 사이에 물이 차는 것을 ‘심낭 삼출(pericardial effusion)’이라 한다. 심낭 삼출이 심하면 심장이 눌려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
심낭 삼출액이 적으면 대개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삼출액이 많으면 심장을 압박해 심장이 확장되는 것을 방해한다. 이에 따라 기침, 딸꾹질, 호흡 곤란, 쉰 목소리, 배부름, 식욕 부진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삼출액이 많으면 건강 검진에서 빠른 맥(빈맥), 경정맥 확장, 간 비대, 말초 부종 등이 관찰된다.
그런데 심낭 삼출은 암 환자에게서 흔히 발견된다. 주로 암세포의 침범 때문이며 항암제나 방사선 치료에 따른 몸의 면역 체계가 반응하면서 생기는 부작용이 원인으로 꼽힌다.
김은경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교수·김소리 고려대 안암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연구팀은 암으로 인한 악성 심낭 삼출 환자에서 심낭 천자 시술 후 2개월 이상 콜히친을 투여하면 합병증 발생이 감소하고, 사망률도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심낭 천자'란 가느다란 관(카테터)을 몸 속에 집어 넣어 심낭에 찬 물을 빼내는 것이다.
하지만 심낭에서 물을 빼낸 뒤에는 심낭이 서로 들러붙어 염증이 생길 때가 많고, 이로 인해 심장 기능이 떨어지기 쉬워 오히려 암 치료가 어려워지기도 한다. 이 때문에 암으로 인한 악성 심낭 삼출 치료에 대한 권고가 거의 없을 정도다.
연구팀은 항염증제인 '콜히친'에 주목했다. 콜히친은 일반적인 심낭 염증 재발을 막기 위해 주로 쓰이지만 암환자에게는 시도된 바 없다.
2007~2018년 삼성서울병원에서 심낭 천자를 시술 받은 악성 심낭 삼출 환자 445명을 대상으로 콜히친 등의 항염증제 복용 여부에 따른 합병증 발생 및 사망률을 분석했다.
그 결과, 전체 환자의 46%에서 시술 후 교착성 심낭염 소견을 보였고, 26%는 심낭 삼출이 재발했다. 이를 토대로 콜히친 투여군은 그렇지 않은 환자와 비교한 결과, 콜히친 투여군은 합병증 발병 위험이 35% 낮았다. 사망 위험도 비투여군에 비해 40% 가까이 줄어드는 것으로 집계됐다.
김 교수는 “다양한 항암제 발전으로 악성 종양 환자의 생존 기간이 향상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악성 심낭 삼출처럼 상대적으로 드물었던 합병증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했다.
이번 연구에서 심낭 천자 후 콜히친을 투여한 환자의 사망률이 유의미하게 줄어든 것도 심낭 천자 후 합병증 비율이 감소하면서 항암 치료를 조기에 재개할 수 있었던 덕분으로 풀이됐다.
김 교수는 “콜히친 투여가 심낭 천자술 후 합병증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힌 연구”라며 “앞으로 콜히친의 적절한 투여 시기 및 용량, 투여 기간에 대해 전향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연구 결과는 ‘미국심장학회지(Journal of American College of Cardiology, IF=20.589)’ 최근호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