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메프체, 싸만코체, 김좌진체…글씨체 만드는 유통기업들, 왜?

입력
2020.11.03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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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 서체 배포, 다른 산업계엔 드문 현상
돈 안되지만 이미지 메이킹에 좋은 수단
저관여상품 특성과 가치소비 추세 반영
스토리텔링 입힌 글씨체로 입소문 마케팅


온라인 쇼핑몰 위메프는 올 9월부터 문서 작성에 ‘위메프체’를 쓰기 시작했다. 최근엔 외부로 내보내는 공식 자료에도 위메프체를 적용하면서 사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위메프가 직접 개발한 이 글씨체는 지난 한글날 무료로 공개됐다. 위메프는 자체 서체를 만든 이유에 대해 “내부적으론 소속감을 증대시키고, 외부적으론 고객과 일관된 이미지로 소통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유통업계의 서체 개발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자체 제작한 글씨체가 소비자들과의 최접점에 있는 유통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면서 일관된 브랜드 정체성 각인에도 긍정적이란 평가가 이어지면서 서체 개발에 나서는 기업이 늘고 있다.

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전자상거래 업체부터 편의점과 식품업체, 배달 플랫폼과 화장품업체 등 다양한 기업들이 자체 글씨체를 선보이고 있다. 유통기업에서 선보인 서체는 인터넷에서 내려받아 누구나 무료로 사용 가능하다. 무료 배포되기 때문에 금전적 이익은 없지만 전파될수록 소비자들에게 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위메프는 올 상반기부터 글씨체 디자인에 착수했다. 굴림과 꺾임이 조화를 이루는 로고의 형태적 특징을 담아내는 데 주력했다. 서체 디자인은 작은 영역 안에 명확한 콘셉트를 포함해야 하고, 글자의 구성과 조합에 대한 규칙도 따라야 하는 섬세한 작업이다. 전하나 위메프 기업커뮤니케이션팀장은 “포스트잇 같은 네모난 틀 안에서 글자 하나하나의 형태를 잡아갔다”며 “글자 수가 많은 한글은 알파벳보다 디자인 작업이 더 까다롭다”고 말했다.

빙그레에선 2015년부터 ‘스테디셀러’ 제품의 로고 디자인을 기반으로 만든 글씨체를 해마다 공개했다. 빙그레체와 따옴체, 메로나체 등 앞서 배포한 서체들은 다운로드 횟수가 200만건을 넘었고, 올해는 새로운 싸만코체를 발표했다. 빙그레 관계자는 “성금 기부 같은 활동은 많은 기업이 참여하기 때문에 금액이 크지 않으면 주목받기 쉽지 않다”며 “서체 배포는 기업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만드는 효과가 비용 대비 큰 사회공헌 활동”이라고 전했다.

유통업계의 이런 서체 바람은 마케팅 분야에서 '저관여상품'으로 분류된 업종의 특성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저관여상품이란 값비싼 차량이나 전자제품처럼 구매 전 많은 정보를 찾아보고 고민하지 않는 제품을 뜻한다. 가까운 데서 쉽고 저렴하게 살 수 있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선 소비자들에게 자사 브랜드를 경쟁사보다 조금이라도 더 알려야 하고 좋은 느낌으로 기억되게 해야 한다. 특히 요즘은 기업 이미지를 근거로 제품을 구매하는 가치소비 경향이 확산하고 있는 만큼 기업들의 이미지 만들기 전략이 더 중요해지는 추세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이 청산리전투 승전 100주년을 기념해 한글날 공개한 ‘김좌진 장군체’의 온라인 페이지는 한 달 새 2만5,000번 클릭됐다. 세븐일레븐은 장군비빔밥, 장군주먹밥 등 이 서체를 포장에 적용한 제품을 출시하며 독립운동의 의미를 알리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배달 애플리케이션 배달의민족은 을지로 일대 간판 느낌을 담은 ‘을지로체’를 작년 선보인 뒤 올해는 이를 희끗희끗하게 변형한 ‘을지로 10년후체’를 내놓았다.
업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글씨체에 이야기를 담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해 친숙한 이미지를 확보하려는 스토리텔링 마케팅”이라고 분석했다.

임소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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