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레랑스(관용)'의 나라 프랑스에서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 세속주의에 대한 논쟁이 재점화하고 있다. '교사 참수'의 악몽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종교 테러'가 잇따르면서다. 다른 신앙과 사상, 행동 방식을 포용하고 용납한다지만 실제로는 분열을 조장하는 두 얼굴 아니냐는 물음표가 던져진 것이다.
미국 CNN방송은 31일(현지시간) 프랑스에서 최근 잇따라 발생한 테러의 충격을 전하면서 "프랑스에서의 테러는 모욕할 권리(신성모독)에 대한 국가적인 논쟁을 재점화시켰다"고 전했다. 지난달 16일 한 역사 교사가 주간지의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 풍자 만평을 수업에 활용했다가 참수당한 이후 보름여만에 니스의 가톨릭 성당과 리옹의 그리스정교회를 겨냥한 테러가 잇따른 데 대한 분석이다. 이는 교사 참수 사건에 대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 규정이 되레 연이은 종교 테러를 불러온 측면이 있다는 지적과 궤를 같이 한다.
CNN은 "프랑스가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세속주의를 택하고 있지만 실상은 무슬림이라는 사회적 약자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비춰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프랑스에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5만명의 무슬림이 거주하고 있어 외견상 포용·융합으로 포장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경제·사회적 약자의 위치에서 소외돼 있다. 게다가 프랑스의 정치 시스템이 이들 무슬림을 범죄와 동일시하거나 프랑스인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식의 메시지를 공론화하기도 한다. 미리암 프랑수아즈 런던 이슬람학센터 연구원은 "프랑스 극우세력은 범죄나 빈곤 문제를 구조적 불평등이 아닌 '무슬림 탓'으로 몰아붙인다"고 지적했다. 실제 극우정당인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은 2010년 히잡 착용 금지법 도입 등을 통해 반(反)무슬림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논쟁의 소재가 될 수 있는 건 마크롱 대통령이 교사 참수 사건 후 강조한 '표현의 자유' 문제다. 주간지의 신성모독 권리를 공개 지지한 것이 자칫 다른 종교에 대한 조롱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무슬림 대학생 레일라는 "마크롱의 무함마드 조롱 만평에 대한 지지는 전 세계에 우리의 종교를 무시해도 된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사우디아라비아·터키·인도네시아·파키스탄 등 이슬람 국가들에서 보여지는 최근의 반프랑스 기류는 이 같은 해석과 맞닿아 있다. 범위를 프랑스로 한정해보면 국론 분열로 비화할 수 있다는 예상도 가능하다. CNN은 "국가가 자극적이고 혐오스러운 표현을 지지할 경우 극단주의자가 아니고 테러를 지지하지 않는 대다수의 프랑스 무슬림이 편견의 대상이 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표면상으로는 표현의 자유라는 대의명분을 강조했지만 실상은 민족주의 성향을 보인다는 지적도 있다. 이는 재선을 의식한 정치 행보라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종교 고문이었던 달리아 모가헤드는 "마크롱 대퉁령이 만평을 지지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프랑스의 (배타적인) 민족주의를 드러냈다"면서 "이는 다른 상황에서라면 다른 나라와 다른 종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마크롱 대통령의 언급은) 강력한 국가기관이 취약하고 소외된 집단을 목표로 삼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면서 "자칫 인종적 비방으로 번질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CNN은 전문가들을 인용해 "프랑스는 지금 직면한 문제를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맞서 치열한 사회적 논쟁을 벌여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는다면 프랑스인과 이슬람교도로 분열될 것이고 이는 테러리스트들이 정확히 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