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 차기 사무총장 선호도 조사에서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의 경쟁 상대였던 나이지리아의 응고지 오콘조이웰라 후보가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WTO 의장단이 오콘조이웰라를 사무총장으로 추천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164개 회원국 전체의 동의를 받는 과정을 남겨두고 있지만 WTO 의장단의 단수 추천에 따라 오콘조이웰라 후보의 당선이 유력한 상황이다. 다만 미국이 이날 즉각 반대 의사를 표명해 미국의 거부권 행사가 막판 변수로 떠올랐다.
로이터 통신은 28일(현지시간) “‘트로이카’라 불리는 WTO 핵심 그룹이 오콘조이웰라가 WTO를 이끌도록 제안했다”면서 “WTO 25년 역사에서 최초의 여성이자 아프리카 출신 사무총장 탄생의 길을 열었다”고 보도했다. ‘트로이카’는 WTO의 3개 주요 위원회인 일반이사회(GC), 분쟁해결기구(DBS), 무역정책검토기구(TPRB)의 위원장을 이르는 말로 WTO 의장단을 지칭한다. WTO 사무총장 선거를 관리해온 이들이 27일 끝난 회원국 선호도 조사를 바탕으로 오콘조이웰라를 사무총장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뜻이다. 로이터통신은 “여전히 전체 회원국의 동의가 필요하긴 하지만, 이번 추천이 4개월 이상 걸린 후보 선출 과정에 쐐기를 박는 것”이라고 전했다.
WTO는 이날 오전 11시 제네바 주재 한국과 나이지리아 대사를 불러 두 후보에 대한 선호도 조사 결과를 통보했으며 오후 3시 전체 회원국에도 조사 결과를 알렸다. 오콘조이웰라 후보는 27표를 지닌 유럽연합(EU)과 고국 나이지리아가 속한 아프리카 대륙의 지지를 얻으며 우위를 보여왔다. 오콘조이웰라 후보 측은 164개 회원국 중 104개국의 지지를 받았고 유 본부장은 60개국의 지지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도 유 본부장이 선호도 조사에서 뒤질 것으로 예상하긴 했으나, 이는 당초 예상치 보다도 큰 차이다. WTO 의장단이 이날 오콘조이웰라 후보를 단수 추천한 것도 이 같은 큰 격차 때문으로 보인다.
통상적인 관례로 보면 WTO 의장단 추천으로 오콘조이웰라 후보가 사무총장으로 사실상 결정돼 회원국들의 추인 과정만 남겨둔 것이지만, 미국이 반대 의사를 표명하면서 최종 합의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WTO 대표단 회의에서 데니스 시어 미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가 오콘조이웰라 후보를 지지할 수 없다고 밝혔다면서 "이는 미국의 거부권 행사를 의미한다"고 전했다. WTO는 선거 과정을 거친 뒤 최종적으로 전체 회원국의 합의를 통해 사무총장을 선출해왔다. 블룸버그통신은 "WTO 일반이사회가 컨센서스(의견일치)를 도출하지 못할 경우 마지막 수단으로 투표를 선택할 가능성을 고려할 수 있다"며 "이는 WTO에선 전례가 없는 일이다"고 전했다.
미 국무부는 최근 전세계 각국 공관에 주재국 정부가 유 본부장을 지지하는지를 파악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등 유 본부장 지지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여왔다. 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27일(현지시간) "(국무부의 지시에는) 주재국 정부가 어느 후보를 지지하는지를 파악하고, 결정된 바 없다면 유 본부장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부드럽게 권유하라는 내용이 포함됐다"면서 "이는 미국이 유 본부장을 지지한다는 가장 명확한 신호"라고 평가했다. 미국이 WTO 회원국으로서의 단순한 지지를 넘어 한국에 대한 '서포터' 역할까지 자처한 셈이다. 중국이 아프리카에 대한 영향력을 고려해 오콘조이웰라 후보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반면, 미국은 WTO내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유 본부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보호무역론자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오콘조이웰라 후보가 로버트 졸릭 전 세계은행 총재 등 워싱턴의 친무역 국제주의자와 너무 가깝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WTO는 전체 회원의 합의 과정을 통과한 후보를 다음달 9일 일반이사회 특별회의를 개최해 새 사무총장으로 선임할 방침이다. WTO는 브라질 출신의 호베르투 아제베두 전 WTO 사무총장이 지난 5월 임기를 1년여 남기고 돌연 사임을 밝히면서 6월부터 차기 수장 선출 작업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