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의 마지막 출근길을 지켜보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수천 명의 임직원이 몰려든 경기 용인시 기흥·화성 반도체 사업장은 고요했다. 운구차가 천천히 공장에 접어들자 도로 양편에 4, 5줄로 늘어선 임직원들은 흰 국화를 손에 들고 조용히 눈시울을 붉혔다. 운구행렬이 향한 곳은 고인이 2010년과 2011년 기공식과 준공식에 직접 참석할 만큼 특별한 애정을 보였던 16라인. 방진복을 입은 직원들이 손에 16라인 웨이퍼(반도체 원판)를 들고 나와 고인을 기리자, 유가족들은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한국 경제의 '거목'인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영결식과 발인이 28일 진행됐다. 6년 간의 투병 끝에 지난 25일 향년 78세로 별세한 이 회장의 명복을 빌기 위해 가족들을 비롯해 고교 동창과 재계 인사들이 참석해 예를 갖췄다. 오전에 시작된 운구 행렬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자택과 집무실, 화성 사업장으로 이어진 뒤 경기 수원시의 가족 선영에 도착했다.
이날 오전 7시20분쯤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유족들은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암센터를 통해 영결식장으로 이동했다. 검은 상복을 입은 이 부회장 뒤로 홍 전 관장과 이 사장, 이 이사장이 흰 상복을 입은 채 서로 부축하면서 뒤를 따랐다.
약 한 시간가량 진행된 영결식에선 이 회장을 기억하는 이들의 추모가 이어졌다. 이수빈 삼성경제연구소 회장은 이 회장의 삶을 회고하다 "영면에 드셨다"는 부분에서 목이 메인 듯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의 고교 동창인 김필규 전 KPK 회장은 "'승어부(勝於父)'라는 말이 있는데, 아버지를 능가하는 것이야말로 효도의 첫 걸음이라는 뜻"이라며 "나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지만 이 회장보다 '승어부'한 인물을 본 적이 없다"고 회상했다. 이 회장이 창업자인 이병철 선대 회장을 뛰어 넘는 성과를 거뒀다는 뜻이다. 이어 "부친의 어깨 너머로 배운 이 회장이 부친을 능가하는 업적을 이루었듯, 이 회장의 어깨 너머로 배운 이재용 부회장은 새로운 역사를 쓰며 삼성을 더욱 탄탄하게 키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영결식엔 고인의 여동생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과 조카 이재현 CJ그룹 회장,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 등이 참석했다. 친분이 있었던 부친들에 이어 이 부회장과도 가까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동참했다. 유족들은 8시 20분쯤 다시 암병동을 통해 밖으로 나와 준비돼 있던 소형 버스를 나눠 타고 먼저 병원을 빠져나갔다.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였던 이부진 사장은 차에 올라탄 뒤 슬픔을 참지 못하고 오열하기도 했다.
운구차량은 8시 50분쯤 밖으로 나왔고 이 회장의 영정을 든 관계자들과 삼성 사장단이 운구 행렬을 뒤따랐다. 권오현 전 회장과 윤부근 전 부회장, 김기남 부회장 등 전현직 사장단이 여기에 포함됐다.
운구 행렬은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자택과 승지원(집무실) 등을 정차하지 않고 거쳐 이 회장이 생전 사재를 털어 일군 화성·기흥 반도체 공장으로 향했다. 이 곳은 고인이 2004년 반도체 사업 30주년 기념 행사를 포함해 총 네 차례에 걸쳐 직접 방문하는 등 생전 특별한 애정을 쏟은 곳이다. 반도체 사업 성공을 향한 이 회장의 열망이 반영된 장소이기도 하다. 운구 행렬이 약 25분간 화성 사업장을 천천히 도는 동안 이 회장의 생전 바람을 착실히 이뤄가고 있는 수천여명의 전현직 임직원뿐 아니라 협력사 직원, 인근 주민들까지 무거운 얼굴로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이 회장은 경기 수원시에 있는 가족 선영에서 유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에 들었다. 대한민국 경제의 큰 별이 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