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식 선생님 노래로 앨범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손대기 시작하면 너무 방대하고 거대한 작업이 될 테니까요.”
재즈 가수 말로에게 송창식은 오를 생각도 못했던 커다란 봉우리였다. 전통가요 11곡을 재해석해 냈던 ‘동백아가씨’(2010)와 ‘말로 싱즈 배호’(2012)에 이은 'K스탠더드' 3번째 앨범을 구상할 때도 송창식은 후보에 없었다. 소속사 JNH뮤직 이주엽 대표의 제안으로 1년간의 도전 끝에 그 결실 '송창식 송북'을 내놨다.
23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말로는 송창식을 "외국곡 번안에서부터 포크, 록, 국악 등 폭넓은 스펙트럼의 음악을 소화해낸 작곡가”라 평가했다. 송창식을 '가수'가 아닌' 작곡가'라 칭한 것은 송창식이 ‘부른’ 노래가 아닌 ‘쓴’ 노래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송창식 선생님이라면 노래 부른 사람으로 알아요. 그만큼 그분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각인됐다는 얘기죠. 제 작업에선 송창식을 가수 이전의 작곡가라 생각하고 그에 맞춰 곡을 재해석하려 했어요.”
송창식 노래 리메이크는 이미 많다. 하지만 송창식의 음악만으로 앨범 하나를 만든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재즈계에선 더욱 그런데, 말로는 무려 22곡에다 손을 댔다. ‘우리는’ ‘고래사냥’ ‘푸르른 날’ ‘사랑이야’처럼 널리 알려진 곡도 있고, 그렇지 않는 곡들도 있다. 말로는 “제가 좋아하는 곡에다 이주엽 대표가 추천한 곡을 더했다”며 “‘밤눈’이나 ‘꽃, 새, 눈물’처럼 원래 잘 모르다 알게 된 좋은 곡들도 많아서 두 장짜리 앨범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송창식 재해석 작업은 예상만큼이나 험난했다. 유명한 곡일수록 어려웠다. 재즈 화법으로 완전히 재조립하는 거라면 시험삼아 해볼 수 있겠지만, 대중과의 접점을 잃지 않아야 하니 '적정선'을 찾는 게 어려웠다.
“첫 곡인 ‘가나다라마바사’는 애초에 박자를 더 잘게 쪼개 ‘하드’하게 편곡했고 ‘왜 불러’도 난해하게 바꿨어요. 시도하고 싶은 게 많았으니까요. 이주엽 대표가 들어보더니 너무 어렵다고 해서 욕심을 많이 뺐죠. 이후론 작업이 순조롭게 이어졌어요. 선생님의 곡 자체가 전형적 가요에서 벗어난 독특한 곡이 많아 자유로운 음악 형식인 재즈와 잘 어울리더군요." 그렇다고 파격적 편곡을 포기한 건 아니다. "나중에 다시 기회가 된다면 그 생각들을 다시 시도해보겠다"며 웃었다.
크게 손 안댔다고 하지만, 22곡이 실린 앨범은 다양한 색깔을 내뿜는다. ‘밀양 머슴 아리랑’은 아카펠라의 대가 보비 맥퍼린처럼 목소리로만 리듬과 화음을 채웠고, ‘선운사’는 차분한 보사노바로 재해석했다. ‘왜 불러’는 탱고와 플라멩코 기타를 타고 전혀 다른 얼굴로 내보인다. ‘우리는’은 송창식과 함께 듀엣 곡으로 만들었다. “선생님께서 흔쾌히 수락해주셔서 감사했다"고 말했다.
K스탠더드 작업은, 한국 대중음악에서 우리만의 스탠더드 재즈를 길어 올리겠다는 야심찬 작업이다. “미국의 스탠더드 재즈를 부르는 게 제 즐거움을 위한 거라면, K스탠더드는 대중을 향한 작업입니다. 한국인이 잘 아는 노래를 우리말 가사 그대로 살려서 재즈로 부르는 것, 그것이 한국적 재즈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