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햇살이 따듯했던 10월의 어느 주말, 필자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시회에 다녀왔다. '문화재의 비밀을 밝히다'란 부제가 붙은 이 전시회의 제목은 '빛의 과학'이다. 문화재에 숨은 비밀, 감추어진 과거의 이야기를 밝히는 데 빛의 과학이 어떻게 이용될 수 있다는 말일까. 빛을 주요 연구 수단으로 활용하는 필자 입장에선 빛과 문화재의 관계가 무척 흥미로운 주제로 다가왔다.
빛은 우리가 정보를 획득하는 주요한 수단이다. 시각을 통해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은 다른 감각기관으로 수용하는 정보를 압도한다. 그런데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의 비밀을 파헤친 빛은 단지 눈에 보이는 빛만이 아니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빛, 즉 가시광선 외의 다른 전자기파들도 유물의 비밀을 파헤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었다.
박물관 보존과학부의 연구원들은 유물을 어떤 방식으로 조사할까.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건 눈을 이용하는 육안 검사다. 천장의 조명등에서 출발한 빛은 유물의 표면에 부딪혀 일부가 흡수되고 나머지가 반사되어 우리 눈에 들어온다. 가시광선은 인간의 시각 체계가 직접 지각하는 빛이다. 눈의 망막에 맺히는 상을 통해 유물의 형상과 보존 상태, 파손 여부를 조사할 수 있다. 때론 유물 표면에서 변조되어 눈에 들어온 빛의 색감이나 스펙트럼을 측정해 표면을 구성하는 재질을 유추할 수도 있다.
매우 섬세한 장식이나 구조를 가진 유물이라면 돋보기로 세부 구조를 확대해 볼 수도 있겠지만 훨씬 자세하게 보려면 광학 현미경이 필요하다. 렌즈의 조합으로 물체를 약 1,000배나 그 이상으로 확대할 수 있는 현미경은 유물의 세부 구조나 장식, 혹은 제작에 활용된 공예 기술을 확인하는데 매우 유용한 장비다. 이번 특별전에선 국보 제89호인 금제 허리띠 고리(낙랑 1세기)를 장식한 수많은 금 알갱이가 펼친 화려한 문양의 확대된 모습을 공개함으로써 삼국 시대의 섬세한 금공예 기술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눈이나 현미경을 통한 외관 조사로는 유물의 비밀을 파헤치는 데 한계가 있다. 표면 아래에 감추어진 물질이나 유물 속의 구조는 직접 분해하지 않고 들여다보기 힘든 부분이다. 그런 경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빛들이 구원투수가 된다.
유물의 내부를 보고 싶다면 침투력이 높은 전자기파, 즉 엑스선이나 감마선을 사용하면 된다. 그 원리는 병원에서 하는 엑스레이 촬영과 비슷하다. 에너지가 센 엑스선은 다양한 물질 속으로 깊숙이 침투하거나 통과할 수 있다. 신체를 뚫고 지나가는 엑스선은 조직별로 통과되는 정도가 다르다. 뼈와 근육에 대한 투과도가 다르니 신체를 통과할 때 신체 내 구조의 정보를 가지고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촬영된 2차원 영상은 사물의 내부 구조에 대한 평면적이고 제한적인 정보만 준다. 따라서 유물에 대한 정밀 진단이 필요할 경우에는 CT(Computer Tomography)라고 부르는 컴퓨터 단층 촬영 기법을 동원한다. CT 기법에선 대상이 되는 유물에 대해 엑스선 빔을 다양한 각도로 쏘면서 반대편의 검출기를 통해 투과된 엑스선의 세기를 측정한다. 엑스선이 지나가는 궤적에 놓여 있는 물체의 구조에 따라 투과된 빔의 세기가 달라진다. 이를 모든 방향으로 스캔해 2차원 단면도를 순차적으로 얻은 후에 정교한 수학적 모델을 활용해 3차원 구조를 구축할 수 있다.
필자에게 이번 전시회의 백미는 국보 제78호인 금동반가사유상(삼국시대 6세기)과 국보 제91호인 기마 인물형 토기(신라 6세기)였다. CT를 통해 드러난 이들 내부의 3차원 영상은 유물들의 제작 방법이나 용도를 명확히 보여 주었다. 가령 부처의 사유하는 모습을 담은 은은한 자태의 반가사유상에 대한 CT 스캔 결과 불상을 만들기 위해 사용된 금속심의 배치를 확인할 수 있었고 내부의 세부적인 구조도 확인됐다. 이를 통해 당시 청동을 활용한 주조 기술의 높은 수준도 드러났다. 신라시대의 생활상을 생생히 보여주는 기마 인물형 토기도 CT 스캔을 통해 물이 들어가고 나오는 통로의 크기 및 내부 빈 공간의 체적까지 정확히 파악됐다.
그렇지만 3차원 형상만으로 유물의 제작 방식이나 사용된 물질을 구체적으로 파헤치기는 힘들다. 유물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선 제작에 사용된 재질을 분석해야 한다. 여기에는 다양한 원소 분석법이 동원된다. 엑스선 형광 분석법(X-Ray Fluorescence Spectroscopy, XRF)이 대표적인 방법 중 하나다. 물체의 3차원 형상 분석에 동원된 CT의 엑스선과는 다르게 XRF에서 엑스선은 물체를 구성하는 원소의 종류와 함량을 추적하는 탐정이 된다.
사람을 구별하기 위해서 지문이나 홍채 정보가 필요하듯이 유물을 이루는 재질의 원소들을 구분하기 위해서도 기준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현대물리학이 밝힌 원자의 내부 모습을 잠깐 들여다보자. 원자는 원자핵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배치된 오비탈(orbital)이라고 부르는 특정 궤도들을 따라 전자들이 도는 모습으로 단순화할 수 있다. 양자역학적 법칙에 따라 각 궤도에 머물 수 있는 전자의 수는 2개로 제한되고 원자핵에 가까운 궤도일수록 에너지가 낮다. 따라서 외부에서 엑스선과 같은 에너지가 입사되면 낮은 궤도(낮은 에너지)의 전자가 이를 받아서 높은 궤도(높은 에너지 상태)의 비어 있는 자리로 올라간다. 중요한 것은 원소마다 전자 궤도의 구조와 고유 에너지가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즉 전자 궤도의 구조는 100종이 넘는 원소를 구분해낼 수 있는 지문이 된다.
그림의 개략도를 보면 짧은 수평선들은 전자 궤도를 표현하고 검은 원은 거길 채우는 전자들을 나타낸다. 에너지가 매우 높은 엑스선이 들어가면 원자핵에 가까운 궤도에 놓인 전자가 엑스선 에너지를 흡수해 탈출하면서 흰색 원으로 표현된 빈 자리를 만든다. 그러면 높은 궤도를 점유하던 전자 하나가 빈 자리가 있는 낮은 궤도로 내려와 이 자리를 채운다. 에너지 보존 법칙에 따르면 자신이 높은 궤도에서 가지고 있던 에너지를 포기하고 낮은 궤도의 빈 자리를 채우는 전자는 자신이 포기한 에너지를 어떤 형태로든 방출해야 한다. 이 에너지는 보통 ‘형광’이라고 부르는 전자기파의 형태로 방출된다. 원소마다 전자의 궤도 구조가 전부 다르고 떨어지는 폭도 다르다. 따라서 빈 자리를 채우는 전자가 방출하는 전자기파의 에너지와 파장도 원소별로 달라진다. 이 전자기파의 파장과 세기를 조사하면 엑스선이 입사된 물질 내 원소의 종류와 함량을 구할 수 있다.
함께 포함된 그래프는 전형적인 엑스선 형광 스펙트럼의 예로서, 여러 원소 내 전자가 빈 구멍을 채우며 방출하는 다양한 전자기파 신호가 에너지의 순서로 나열되어 있고 해당 형광 신호에 대응하는 원소들도 표기되어 있다. 따라서 미지의 재료에서 방출되는 엑스선 형광 신호의 에너지를 측정해 이 그래프의 데이터와 비교하면 어떤 원소가 그 재료 속에 숨어 있는지 알 수 있다. 게다가 형광 신호의 세기는 그 신호를 만든 원소의 함량에 비례한다. 이 기법을 이용해 다양한 귀금속 유물 내 금의 비율이나 고구려 고분 벽화의 채색에 사용된 성분들을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었다.
이것이 빛의 과학이 밝힌 유물 이야기의 끝은 아니다.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긴 적외선은 서화 밑그림의 흔적을 찾아내거나 목간(木簡)에 기록되었다 지워진 먹의 흔적을 추적하는데 효과적인 빛이다. 실제 2011년 부여에서는 백제 시대에 구구단 학습에 사용된 ‘구구단 목간’이 발견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가시광선의 보라색 너머에 존재하는 자외선은 과거 백자나 청자의 복원에 사용된 재료나 염료를 추적해 유물의 아픈 과거를 드러내기도 한다.
전시된 유물 하나하나마다 다양한 종류의 전자기파에 반응하는 방식이 다르고 품은 이야기들도 다채롭고 풍부하다. 11월 중순까지 진행되는 이 특별전에서 다양한 빛이 밝혀낸 문화재의 비밀을 엿보고 각 유물들이 1,000년 넘게 품어온 흥미로운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박물관 정원과 마당을 형형색색의 빛깔로 물들인 아름다운 단풍의 감상은 덤으로 얻는 빛의 선물이다.